재단법인 동천에서 일하는 2년차 변호사 김진영(32·사진)씨는 시각장애인이다. 시신경이 발달하지 못한 채 태어나 11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청소년 시절 타인의 권리를 지키는 변호사를 꿈꿨지만 그 길은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었다. 공부할 때 한글파일을 음성으로 번역해주는 장치를 활용해야 해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 때는 교재 저자에게 별도의 파일을 보내 달라고 수십 번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22일 서울 종로구 재단법인 동천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온갖 어려움에도 변호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는 “타인의 도움만 받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며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유리천장’을 깨보겠다고 결심한 건 김중미 작가를 만나면서였다. 김 작가는 빈민촌 공부방을 운영했고, 그 내용을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소설로 썼다. 특수학교 강연에서 우연히 만난 김 작가는 당시 중학생이던 김 변호사에게 빈민촌 공부방에 놀러와 또래 아이들과 만나보라고 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당시 청소년기에는 항상 폐만 끼친다는 생각에 눌려 있었던 것 같다”며 “김 작가님이 ‘네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디로 걷고 싶은지 생각하라’고 건넨 말을 가슴속에 품고 살았다. 덕분에 나도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발달장애인의 투표권 소송을 맡았다. 글자를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은 투표권이 있어도 문자 위주의 투표방식 때문에 참여하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발달장애인이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사진과 로고가 삽입된 투표 보조용구를 도입해 달라고 요구해 항소심에서 지난해 말 일부 승소했다. 김 변호사는 “그분들은 그제야 자신이 사회에 속해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정부는 현재 법률개정 사안이라는 이유로 상고한 상태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여러 지체장애인에겐 이미 투표 보조용구가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형식논리”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장애 때문에 혼자 앓고 있는 분들에게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장애와 관련된 법제도 연구 및 입법지원 활동에 더욱 힘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글=김용현 기자, 사진=이한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