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반면 지방은행에는 실적 악화의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얼어붙은 지방 경기가 고스란히 지방은행의 실적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방에서도 시중은행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지방은행이 성장 기반으로 삼아온 지역에서조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23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BNK·iM·JB금융의 순이익은 5326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5436억원에서 약 2.0%(110억원) 줄어든 수치다. 특히 BNK금융은 순이익이 2089억원으로 전년 동기 2546억원 대비 17.6%의 높은 감소율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삼정·금양 등 기업이 잇따라 무너진 영향이다.
JB금융은 1분기 전년 1760억원보다 많은 1784억원의 순이익을 냈지만 성장률은 1.4%에 그친다. iM금융은 1453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지난해 1130억원 대비 28.6%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이는 호실적 덕택이 아니라 지난해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충당금이 줄어든 영향으로 해석된다. iM금융도 1분기 매출액은 1조350억원으로 지난해 1조618억원보다 2.5%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시중은행들이 매년 호실적을 이어가는 흐름과 상반된다. 올해 1분기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순이익은 5조947억원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1분기 4조5461억원과 비교하면 12.0%의 높은 성장률이다. 5대 금융은 지난해에도 18조8362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전년 17조3390억원 대비 8.6%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들은 수년째 역대급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지방은행의 건전성도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BNK금융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1.18%에 달한다. 지난해 말 0.73%였으나 1년 만에 0.45% 포인트 뛰었다.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채권으로, 높아질수록 부실자산이 많다는 의미다. 같은 시점 iM금융의 고정이하여신 비율은 1.63%, JB금융은 0.91%로 집계됐다. 두 금융지주 역시 지난해 말보다 건전성이 악화했다.
이자조차 받기 어려워 이른바 ‘깡통 대출’로 불리는 무수익여신도 현격한 증가세다. 2022년 BNK부산은행의 무수익여신 비율은 0.28%였으나 2023년 0.38%로 오른 뒤 지난해 0.74%로 급증했다. BNK금융은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리스크관리 강화와 적극적인 사후관리를 실시하고 있으나 경기 침체와 대내외 환경 불확실성 증대에 따라 고정이하여신이 전년 대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방은행이 고전하고 있는 주된 배경에는 지방의 경기 침체가 자리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총 2만3722가구로 11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중 80.8%인 1만9179가구가 비수도권에 위치한다.
대표적으로 제주의 경우 지난 2월 건설수주액 및 건축허가면적이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2.6%, 52.3% 감소했다. 미분양주택이 누적된 영향이다. 제주의 지역 경제는 관광업에 의지하고 있으나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동시에 줄면서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지난 2월 대형마트 판매는 1년 전과 비교해 18.3% 줄었고, 신용카드 사용액은 10.6% 감소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어느 지역이랄 것 없이 비수도권 대부분 지역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져 회복세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은행의 안정적인 수익 기반으로 여겨졌던 시금고 입찰 경쟁에까지 시중은행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지방은행의 입지가 더욱 위협 받고 있다. 전국 시금고 총 357개 중 지방은행이 있는 호남, 영남, 제주 지역의 시금고는 총 212개인데 이 중 절반 이하인 98곳만 지방은행이 운영 중이다. 입찰 평가 항목이 지방은행에 유리하도록 설계돼있음에도 시중은행이 출연금, 전산 역량 등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고 있는 영향 때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이후 지방은행은 인터넷은행으로도 고객을 뺏기고 있다. 인터넷은행들은 플랫폼 경쟁력과 차별화된 마케팅으로 공격적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있지만 지방은행은 별다른 경쟁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지방은행의 강점이었던 저원가성 예금은 상당 부분이 인터넷은행으로 옮겨갔다는 진단이다.
인터넷은행까지 가세하며 금리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지방은행들은 시중은행과의 대출 금리 차이를 줄여가며 영업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지난해 6월 평균 3.91%에서 4.39%로 늘었으나 3대 지방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4.17% 수준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지방은행의 대출 금리가 시중은행에 비해 높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에 비해 오히려 0.22% 포인트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지방은행의 현실은 녹록지 않아 지방금융 공급이라는 지방은행의 역할이 위협받고 있다는 평가다. 박만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광주은행지부 위원장은 “정부는 지방은행에 합당한 제도적 우대를 마련하고, 지방은행은 지역사업에 능동적으로 기여하고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