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대통령)은 마주 앉은 내게 복숭아 한 조각에 포크를 꽂아 내밀며 “청와대 뒷산에서 직접 재배한 복숭아”라고 말했다.
복숭아를 받으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날 신문에서 본 기사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 문이 닫혀 있어 아기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병원 문이 열리지 않아 벌어진 일인데요, 병원을 좀 더 개방해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힘쓰신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소문도 퍼지지 않겠습니까.”
대통령은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돈은 어디서 구하고 의사는 또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되물었다. 그 순간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로 정치와 싸우지 마시고, 민초를 움직이십시오.” 그러면서 야간에도 운영되는 병원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보모를 뽑는 면접 자리, 그것도 대통령 앞에서 민심 얻는 방법을 제안하다니. 이제 막 마흔을 넘긴, 사회 경력이라곤 교회 전도사뿐인 내가 말이다. 지금 와 다시 돌이켜보면, 무모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대학생 시절, 이화여대 대강당 옆 오이밭에서 나눴던 치열한 정치 토론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조금 떨어져 있던 비서관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고는 “돈은, 병원은, 의사는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해보겠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은 딸 근혜를 불러 내가 한 말을 들었는지 확인하듯 되물었다. 이어 “정치하면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직업이 의사 목사 검사”라고 말했다. 근혜도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통령은 “다음에 다시 보고하라”며 첫 만남을 마무리했다.
이때부터 나는 병원을 어떻게 세울지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화곡제일교회도 정리해야 했다.
병원 설립에 도움을 구하고자 이단·사이비 종교 전문가였던 탁명환 소장을 찾아갔다. 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로 동교동교회에 출석하던 시절 알게 된 인물이다. 당시에도 자신의 사역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
탁 소장은 극장을 운영하는 장로 한 분을 내게 소개해 줬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병원 설립을 위한 후원자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후 대통령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명단을 보여주며 기부금을 모을 방안을 제안했다.
“제가 후원자들을 찾아가겠습니다. 그때 큰 영애씨가 전화 한 통만 해주시면 됩니다. 돈을 달라 하지 마시고 ‘우리 부총재님이 찾아갔는데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대통령은 딸 근혜를 바라보며 “돈 달라는 말은 하지 말고, 도와줘서 고맙다고만 하라니”라고 내 말을 그대로 따라 말하며 크게 웃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비서관들도 함께 웃었다.
이렇게 무료 야간진료소 건립을 위한 기금 모금이 시작됐고 나는 진료소 설립을 맡아 추진했다. 근혜의 대외 활동에 동행할 때면 ‘부총재’로 불렸다. 총재는 근혜였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