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개발에 뛰어드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도 뒤늦게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전 세계에서 공개된 66개 휴머노이드 가운데 국산은 단 1개에 불과해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한 기술 투자와 규제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한 ‘휴머노이드 100’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 2월까지 전 세계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66개 중 중국이 41개로 가장 많았다. 미국이 14개로 뒤를 이었으며 일본이 3개를 발표했다. 한국은 삼성전자 자회사인 레인보우로보틱스 한 곳에 그쳤다.
중국은 강력한 제조 역량을 바탕으로 휴머노이드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2015년에 ‘중국제조 2025’ 전략에서 로봇을 10대 핵심산업으로 지정했다. 이후 지난 10년간 로봇 핵심 부품 국산화를 위한 집중 투자에 나섰다. 오는 2029년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약 750억 위안(14조5702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대기업들도 뒤늦게 기술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휴머노이드 사업 진출을 위한 대대적인 경력사원 공개채용을 진행 중이다. 올 하반기 중 인공지능(AI)과 소프트웨어 중심의 휴머노이드 R&D 조직을 신설하고, 멀티암 제어·충돌 회피·장기 작업계획 등 지능형 로봇 핵심 기술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로봇 연구개발 환경을 보유한 통합 R&D 센터도 구축할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도 지난해 11월 포스코기술투자를 통해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펀드로 로봇 솔루션 기업인 뉴로메카에 100억원을 투자했다. 협동로봇 기업인 뉴로메카는 현재 다양한 연구 과제를 통해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 SK온의 미국 법인인 SK배터리아메리카는 로봇 자동화 시스템 전문 기업 유일로보틱스와 최대주주 변경 가능성이 포함된 콜옵션 계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도 지난해 12월 레인보우로보틱스에 콜옵션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바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기술 투자에 나서는 배경에는 휴머노이드가 갖는 산업적 파급력 때문이다. 모건스탠리는 “휴머노이드는 최대 60조 달러(약 8경5300조 원) 규모의 시장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2024년 세계 자동차 시장 규모(4조3600억 달러)의 약 13.8배에 달한다.
정부도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0일 ‘2030년 휴머노이드 최강국’ 달성을 목표로 ‘K-휴머노이드 연합’을 출범했다. 삼성디스플레이·LG전자·HD현대미포·삼성중공업·CJ대한통운·포스코이앤씨·포스코홀딩스 등이 로봇 수요 기업으로 참여했다.
다만 휴머노이드 상용화 과정에 필요한 안전·인증 등 규제는 미비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인공지능과 소프트웨어 역량이 뒷받침돼야 글로벌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다”며 “정부의 규제 개혁과 산업계의 민관 협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