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사히 보냈다고 안도하며 침실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 맞는 텅 빈 시간. 이 평온함을 조금 더 누리고 싶어 밀려오는 잠을 물렸다. 하지만 그도 잠시, 달갑지 않은 방문객이 찾아왔다. 잡다한 사념들이 머릿속을 바삐 오가기 시작했다. 하루 동안의 일을 복기했고, 미래를 상상했고, 고민과 기대에 살을 붙이며 분주히 떠다녔다. 그 모든 생각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기력이 없어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머릿속에 피어나는 생각들은 제멋대로 떠오르다 흩어졌다. 잊었다고 여겼던 장면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하고, 무심코 스친 생각이 샘물처럼 고였다가 증발해 버리기도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일상의 잔여물처럼 남은 잡념들이 몸 밖으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내심 이 순간을 기다렸다. 시침과 분침 방향을 상관치 않고, 책임져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감정이나 자극도 없이, 어떤 소란도 생기지 않는 시간을. 아주 작은 마음도 얽히지 않은 채 무명(無名)의 존재가 돼 이 세상에 머물 수 있는 순간이 필요했다. 불청객이 물러간 뒤엔 고요가 찾아왔다. 오랜 친구처럼 아무 말 없이 곁에 머물렀다. 고요에 둘러싸인 존재의 무게는 새벽공기처럼 가벼웠다.
호흡에 따라 부풀었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몸통의 움직임을 가만히 느껴본 건 참 오랜만이었다. 살아 있다는 건 이토록 단순하고 명료하게 증명되는데, 살아간다는 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상이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질수록 마음을 치유하는 방식은 단순해진다. 가만히 명상하고 사색에 잠기고 산책을 하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니. 고단함을 내려놓고, 고요 속에 침잠해 삶을 안아본다.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한 끼, 정을 나누고 기댈 수 있는 인연들이 감사하다. 웃고 우는 순수한 감정은 또 얼마나 귀한지. 오늘과 내일 사이 잠시 쉬어가는 시간, 마음을 정화해 맑은 숨을 튼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