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목소리”(CNN), “경제적·사회적 정의의 옹호자”(월스트리트저널), “더 자비로운 교회의 주창자”(블룸버그통신), “가톨릭 교회를 뒤흔든 교황”(로이터통신). 프란치스코(사진) 교황 서거 소식을 전하는 세계 주요 언론의 제목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러모로 획기적인 교황이었고, 재임 기간 내내 록스타처럼 뉴스를 몰고 다녔다. 그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었고,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었다. 또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었다.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2013년 교황에 선출된 것 자체가 가톨릭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리고 12년간 재임하면서 가톨릭교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개혁하고 가톨릭교회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바꿔놓았다.
그는 ‘가난한 이들의 성자’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길을 따르겠다며 교황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했다. 그리고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임기를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관된 주제였다. 교황이 되기 전에도 그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빈민촌 사목에 힘썼다. 마약이 유통되고 폭력이 흔한 우범지대여도 개의치 않고 동행하는 사람 없이 빈민촌을 찾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199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가 됐고, 3년 뒤 추기경에 서임됐다. 이어 2013년 2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 문제로 사임한 뒤 차기 교황으로 선출됐다.
그는 역대 교황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교리를 지키는 데 투철했던 전임자 베네딕토 16세와 확연히 달랐다. 2013년 즉위 이후 가톨릭교회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더 포용적으로 바뀌고 평신도의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며 진보적 개혁을 밀어붙였다.
2021년 교황청은 미성년자 성범죄를 저지른 성직자 처벌을 명문화하는 등 38년 만에 교회법을 개정했다. 지난해에는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논란 속에서 허용했다. 이같은 과감한 개혁 행보 때문에 가톨릭 내 보수 진영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이나 이민, 기후위기 같은 세계 현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기여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방문했다. 2021년에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 땅을 밟아 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그는 북한과 중국을 방문하기 위해 수없이 시도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건강은 3년 전부터 악화됐다. 2022년 봄부터 지팡이를 짚거나 휠체어를 타야 했고, 2023년엔 두 차례 병원에 입원했다. 올해 2월 호흡기 질환으로 입원해 사경을 헤매다가 38일 만인 3월 23일 퇴원했다. 서거 전날인 부활절 대축일(20일)에는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만나고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 그에 앞서 이탈리아를 방문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면담하기도 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