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영문(로마자) 이름이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외교부가 여권 변경 신청을 거부한 것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2020년생 A양의 부모가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여권 로마자 성명 변경 불가 처분 취소 소송을 지난 2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외교부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A양 부모는 2023년 A양 이름에 들어가는 ‘태’를 영문 ‘TA’로 기재해 여권을 신청했다. 수원시 측은 정부가 고시한 로마자 표기법에 어긋난다며 ‘TAE’로 바꿔 여권을 발급했다. A양 부모는 “이름의 실제 발음은 신청한 표기법에 가깝다”며 원래대로 변경해 달라고 신청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불가 처분했고, A양 부모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로마자 성명이 로마자 표기법과 다소 다르다 해도, 대한민국 여권에 대한 대외신뢰도 확보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라거나 범죄 등에 이용할 것이 명백하다고 볼 사정이 없는 한 변경을 거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상식적으로도 cap(캡), nap(냅), fan(팬) 등 모음 ‘A’를 ‘애’로 발음하는 단어를 무수히 찾을 수 있다”며 “변경을 제한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여권상 성명 표기가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영역이라며 “기본권 보장 의무를 지는 행정청은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공익을 중대하게 훼손하지 않는 한 가급적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