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들고 친정 간 필리핀댁과 성도들… 선교 새 패러다임 됐다

입력 2025-04-22 03:01
현마리사(왼쪽 첫 번째)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집사가 지난해 1월 고향인 필리핀 비콜 지역을 방문해 여동생 결혼식에 참석한 뒤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제공

오태훈(62) 제주국제순복음교회(박명일 목사) 장로에게 지난해 1월 필리핀 방문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가족과의 즐거운 여행이나 비즈니스 성과를 거둔 출장이어서가 아니다. 같은 교회 성도 현마리사(35) 집사의 소원을 따라 그의 친정에 복음을 전하러 간 해외 가족 심방이자 선교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오 장로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람의 소원 하나 이뤄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쁜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현 집사는 2010년 한국인과 가정을 꾸리고 장밋빛 삶을 꿈꾸며 제주도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남편의 병원 생활, 가장의 부재가 낳은 생계 문제, 쌓여가는 부채 등 현실적인 장벽 앞에 그의 꿈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두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동네 식당을 돌며 새벽일, 낮일, 저녁일까지 악착같이 해도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국으로 시집 가 행복하게 살 것이라 기대하는 필리핀의 가족들에게 현실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고단하고 암흑 같은 10년을 보내던 그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으로 다가온 사람이 오 장로였다.


오 장로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일과 양육을 병행하고 재정 관리의 지혜도 얻었다. 5년째 신앙생활을 하며 간절한 소망도 생겼다. 고향에 있는 88세 할머니(사진)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오 장로는 바로 움직였다. 오 장로는 “때마침 현 집사의 여동생이 지난해 1월 결혼식을 앞뒀다는 얘기를 듣고 동료 장로와 곧바로 채비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선교팀은 두 장로와 현 집사, 현 집사의 두 자녀(11세, 8세)까지 5명. 단출한 선교팀은 국제선과 국내선 비행기를 갈아타고 차량으로 4시간을 더 달려야 하는 필리핀 비콜 지역으로 향했다. 8년여 만에 만난 가족과 눈물겹게 상봉한 현 집사는 동생의 결혼식 전날 한자리에 모인 친척들 앞에서 그동안 겪어온 역경, 신앙을 갖고 사랑과 은혜를 누린 과정을 소개했다. 오 장로는 “현 집사의 이야기에 이어 복음을 전했는데 모든 가족이 순한 양처럼 경청했다”며 “예식을 마친 뒤 집에 돌아와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현 집사의 할머니께 기도해 드렸는데, 감사하게도 복음을 받아들이셨다”고 회상했다. 선교팀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현 집사가 학창시절 다녔던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나눠주며 복음을 전했다. 이 방문이 남긴 의미는 컸다. 현 집사는 “할머니께서 예수를 영접한 뒤 9개월 후 돌아가셨는데 천국에서 가족들을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라며 “(나도) 신학을 공부해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세우고 필리핀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새로운 꿈”이라고 말했다.

오태훈(가운데)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장로가 현 집사의 필리핀 집에서 가족들과 만나 복음을 전한 뒤 손잡고 기도하는 모습.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제공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사례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급증하는 시대에 국내외 선교 전략을 고민하는 한국교회 상황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1일 이상 장기 거주하고 있는 체류 외국인은 204만2017명으로, 집계가 이뤄진 이래 처음으로 200만명을 돌파했다.

강대흥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사무총장은 “제주국제순복음교회 사례는 현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지향해야 할 다양한 선교 전략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국내 거주하는 이주민을 환대하고 교제를 통해 문화를 교류하는 활동을 선행하는 것이 이주민 선교를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덧붙였다.

오 장로는 “다문화사회로 전환하고 있는 시대에 평신도들이 외국인 성도와 함께 소그룹으로 고향을 방문해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