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관세 장벽 8가지 나열… 깐깐해진 ‘관세 협상 설명서’

입력 2025-04-21 18:44 수정 2025-04-21 18:46
‘미국만(Gulf of America)’이라고 적힌 모자를 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본인 소유 골프장으로 출발하면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무역 상대국의 ‘비관세 부정행위(NON-TARIFF CHEATING)’ 8가지 유형을 직접 거론했다. 각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교역국의 비관세 부정행위 8가지 항목을 나열했다. 환율 조작을 첫 번째로 꼽은 데 이어 관세와 수출 보조금처럼 작용하는 부가가치세, 원가보다 낮은 덤핑, 수출 보조금 및 정부 보조금을 적시했다.

이어 각국의 농업 보호 기준과 기술 기준도 비관세 장벽으로 꼽았다. 특히 농업 보호 기준 사례로 유럽연합(EU)의 유전자 변형 옥수수 수입 금지, 기술 기준 사례로 일본의 볼링공 테스트를 들었다. 트럼프는 또 위조와 불법 복제, 지식재산권(IP) 도용 문제를 지적하면서 연간 1조 달러(1419조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관세를 피하기 위한 환적도 비관세 장벽의 하나로 꼽았다. 환적은 원산지를 속이기 위해 제3국을 경유해 관세를 회피하는 행위를 말한다.

트럼프는 별도의 게시물에선 “해방의 날(4월 2일 상호관세 발표일) 선포 이후 많은 세계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들이 관세 완화를 요청하러 나를 찾아왔다”며 “우리가 진지하다는 점을 세계가 알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들은 수십년간의 (미국에 대한) 부당행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위대한 우리나라의 부를 재건하고 진정한 상호주의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트럼프가 거론한 ‘8대 비관세’의 주요 표적이 한국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특히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여 대미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환율 조작은 한국과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고 평가한다. 한국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원·달러 환율이 1400 원대로 치솟으면서 오히려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조정 차원의 시장 개입)으로 원화 약세에 대응하고 있다. 부가가치세 역시 한국보다는 EU를 겨냥한 언급으로 풀이된다. EU 회원국의 부가세율은 헝가리(27%) 덴마크(25%)를 필두로 대부분 한국(10%)보다 높은 편이다. 다만 일각에선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제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제한 등 일부 비관세 장벽이 한국과의 협상에서 거론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미·중 관세전쟁 여파로 중국 샤먼항공에 인도될 예정이던 미국 보잉사 맥스 737 항공기가 전날 워싱턴주 시애틀의 보잉 생산기지로 되돌아왔다. 해당 항공기는 샤먼항공의 문양으로 도색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관세전쟁 탓에 괌과 하와이를 거쳐 8000㎞를 비행해 시애틀로 반납됐다. 중국 정부는 자국 항공사들에 보잉 항공기를 새로 주문하지 말고, 이미 주문한 항공기도 인도받기 전에 당국 승인을 받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세종=이의재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