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반명 빅텐트’라는 허상

입력 2025-04-22 00:39

지지율 합쳐도 1강에 못 미쳐
후보단일화 '1대 1 대결' 기대

DJP연합 빼고 성공사례 없고
인물난 보수정당 외부 영입뿐

특정인 반대만으로 승리 불가
쇄신·재건 의지·비전 보여야

6월 조기 대선을 앞둔 요즘 여의도의 최대 이슈는 단연 후보 경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두 차례 지역 순회경선에서 보듯 이재명 전 대표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는 중이다. 더 이상 경선 자체 의미가 없을 정도다. 오히려 전체 경선에서 90% 넘는 유례없는 득표율을 얻을지가 더 관심이다.

현재 후보 8명이 뛰는 국민의힘 경선에선 ‘반(反)이재명 빅텐트’가 이슈로 부상했다. 링 밖에서 뛰는 인사를 포함한 후보 단일화를 통해 이 전 대표와 1대 1 구도로 대결하자는 전략이다. 절대 1강인 상대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지지율을 합쳐도 한 사람에 못 미치는 만큼 뭐라도 해야 살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물론 초단기로 치러지는 대선에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나마 승산을 높이기 위해 한 지붕 아래 뭉치는 건 어쩔 수 없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런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고 설사 어렵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해도 스스로 분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빅텐트의 성공 사례는 30년 가까운 과거가 마지막이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DJP연합’을 통해 중도보수까지 흡수해 대선 승리를 거뒀지만 그게 끝이었다. 특히 보수 진영의 인물난 탓인지 최근 10여년간은 대선 후보를 당에서 찾지 못해 외부에서 영입해 추대하는 것이 한국 보수 정당의 특징이 돼버렸다. 국무총리 출신 이회창 김황식,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검찰총장 출신 윤석열이 구애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 중 유일한 성공 케이스인 윤 전 대통령은 초보 정치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멸했다.

더욱 치명적인 결함은 현재 국민의힘 안팎에서 거론되는 빅텐트는 어떠한 동인(動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비전, 정책도 공유하지 않는 이들이 모두 이재명정부의 탄생만은 막자며 목소리를 높이는 형국이다. 정작 본인이 대통령이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새로운 비전과 미래를 제시하지 못한 채 오로지 ‘반이재명’에만 매몰돼 있다.

‘누구만은 안 된다. 뭉치자’는 전략은 무모하다.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대대적인 반이재명 캠페인을 벌였다. 조국까지 끌어들였다. 소위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이었지만 처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현직 대통령의 두 번째 파면으로 붕괴 위기에 닥친 보수 진영은 현재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특히 한국 민주주의에 큰 상처와 혼란을 준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윤(친윤석열)이 빅텐트를 주도한다면 그 확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금 보수 정당 내에선 명확한 대국민 반성과 사죄의 의미를 담은 자정의 노력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무모한 비상계엄으로 파면된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으로 책임 있는 자성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럴 마음도 최소한의 용기도 없는 듯하다. 당을 혁신하고 변화시키려는 치열한 노력은커녕 하다못해 립서비스도 보이지 않는다.

빅텐트론이 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주요한 원인은 전략적 모호성을 꾸준히 이어가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변수 때문이다. 그러나 파면으로 막을 내린 정부의 2인자가 그 직후 대선에 후보로 출마하고, 대선일을 공고한 고위공직자가 정작 자신이 관리해야 할 선거에 나오는 상황은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다.

보수 정당이 윤석열정부의 국정 실패 책임을 만회하려면 극단의 주장을 배척하고 건강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려면 ‘이재명만은 안 된다’를 외칠 게 아니라 보수 쇄신과 재건 의지, 미래 비전을 보여주는 게 정석이다. 외연 확장의 틀을 다시금 만드는 데도 진력해야 한다.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에 참패한 공화당은 다음 선거인 1968년 집권에 성공했지만 몇 년 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로 하야하면서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공화당은 이후 상대를 무작정 반대하는 데 올인하지 않았다. 그 대신 중도, 신보수파와 손을 잡고 외연 확대에 장기간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공화당은 1980년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선거는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유권자들에게 인정받는 절차다. ‘누구만은 안 된다’를 기치로 내건 정당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다. 그런 식의 정치가 반복되면 불신은 커지고 갈등은 더욱 고착화된다. 지금 보수 진영의 빅텐트는 명분도 없고, 성공하기도 어려운 허상에 불과하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