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이 자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병·의원 몇 개나 될까

입력 2025-04-21 23:14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시절, 장애인 건강검진 수검률이 유난히 낮은 이유를 알기 위해 심층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조사 보고서에 “나는 한 번도 키와 몸무게를 재 본 일이 없다”는 기록이 있었다. 두 다리나 척수를 다친 장애인은 긴 널판에 누워 몸의 길이를 재고 무게도 재야 하는데, 이 분은 그런 장비를 갖춘 병원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서울의대 교수 시절에 학생들에게 프로젝트를 시킨 일이 있었다. 학교가 있는 서울 종로구의 의원 중에서 휠체어를 타고 제힘으로 진료실에 가서 앉을 수 있는 곳이 몇 %나 될까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10%였다. 이 상황이 지금도 맞는다면 휠체어 탄 장애인에게 동네 의원의 수는 3만6685개(2024년 기준)가 아니라 3668개다. 아마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좋은 보건의료의 조건으로 첫손가락 꼽는 것이 ‘필요하면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접근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성을 저해하는 원인으로는 지리적 불균형과 경제적 장벽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은 이 점에서 상당히 양호하다. 의료기관은 전국에 분포해 있고 건강보험은 진료비를 크게 낮추어 준다. 고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남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의료기관 접근성에는 특수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체·시각 장애인들이 많은 위험을 넘어서 자력으로 접근할 수 있는 병·의원의 수는 정말 몇 개나 될까. 소통이 문제되는 청각 장애인에게 수어 통역을 제공하는 병원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정신·발달·뇌병변 장애인들을 치료해 주는 치과는 전국에 400개쯤 있다고 하고 보건복지부는 장애 친화 산부인과를 전국에 10개 지정해 두고 있다. 이건 아프리카 수준의 지리적 분포가 아닌가.

신장(콩팥) 장애인들은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한다. 늘 엉망진창인 팔을 부여안고 피로, 어지러움, 구역질, 무기력, 우울을 버티며 간다. 오죽하면 이들이 꼽은 돌봄 필요 1순위가 병원까지의 이동 지원일까. 이동 수단은 모든 장애인에게 심각한 문제다. 이 모든 상황을 장애인은 스스로 극복하면서 의료에 접근해야 한다. 그것은 가족의 돌봄 부담, 비용 부담, 경제적 장벽으로 나타난다.

장애인도 필요할 때는 필요한 곳에서 키를 잴 수 있어야 한다. ‘키를 재 주는’ 나라가 되자.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