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학교 세워 사역 첫발… 의료·급식 사역하며 교회 개척

입력 2025-04-22 03:23

기독교 선교 역사에 빛나는 이름이 많지만 가장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특별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살았다는 올림포스산 아래 쓰레기 매립지 위에 세워진 작은 교회에서 27년간 ‘집시들의 이웃’으로 살았던 김수길(68·오른쪽) 조숙희(65) 선교사 부부의 지난 여정은 인내와 믿음, 그리고 사랑의 결실들로 가득하다.

지난달 15일 그리스 중앙마케도니아주 카테리니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만난 부부는 인터뷰 내내 낮춰 부르는 ‘집시’라는 단어 대신 ‘로마족’이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했다.

김 선교사는 “로마족은 1000년 전 인도에서 유럽으로 이주한 독특한 종족”이라며 “예능에 많은 달란트를 가진 이들이라 노래와 춤을 좋아한다. 스페인이나 동유럽에서는 예능계에서 활동하는 로마족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부부가 로마족 사역을 시작한 방식은 ‘길거리 학교’였다. 조 선교사는 “처음 이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대부분 어린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며 “그래서 가장 쉬운 숫자와 글자를 가르치는 길거리 학교를 시작으로 친구가 된 뒤 이들의 마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의료 사역과 급식,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 사역을 번갈아 진행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참여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자 2008년 테살로니키공항 근처에 첫 신앙공동체인 ‘야생화교회’를 개척했다. 2013년에는 첫 교회를 그리스 복음주의 총회에 이양한 뒤 쓰레기 매립지 마을에 ‘카테리니 로마교회’를 또다시 개척했다.

긴 시간 동안의 사역이 순탄했을 리 없다. 김 선교사는 “이 사역의 열쇠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께 한없는 인내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힘든 순간은 현지인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을 때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은 기도 가운데 ‘그들을 믿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그 사랑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김 선교사 부부는 카테리니 마을에서 일어난 긍정적 변화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현재 이 마을에 초·중·고등학교에 30여명이 있는데 사역 초기와 비교하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생계형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 로마족들이 마을의 닭 농장에서 일하는 것도 놀라운 변화다.

김 선교사 부부에게는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로마족 사역자를 파송해 이들의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다. 부부의 소망을 곧 결실을 본다. 아테네신학교에서 신학 훈련을 받는 신학생이 로마족 지도자로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현재 섬기는 교회는 건축도 앞두고 있다. 김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로마족의 견고한 진이 무너져 모든 이들이 회개하고 주님의 자녀가 되고 로마족 다음세대를 예비하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테살로니키(그리스)=글·사진 김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