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국 작가 에드워드 고리의 탄생 100주년이다. 일본 서점의 신간 매대에 ‘윌로데일 수동차(willowdale handcar)’가 진열된 걸 보고야 알았다.
고리의 책은 마치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처럼 보이지만 비일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다룬다. 처음 고리의 책을 본 건 영국 요크의 책방에서였다. 고딕풍의 짧은 이야기에 잉크와 펜을 사용한 흑백 그림이 곁들여져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던 작가인 줄 착각했다. 알고 보니 그는 1925년 미국 시카고 출생으로 하버드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고리가 뉴욕 더블데이 서점의 아트 부서에 근무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부쩍 관심이 생겼다.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필자로서 서점에 근무했던 작가라니 반가웠다. 게다가 그는 책방 덕분에 유명해졌다. 뉴욕 미드타운에 ‘고담북마트’라는 서점이 있었다.
1900년대 중반 서점이 그렇듯 작가와 문학 애호가의 아지트였다. 아서 밀러와 재클린 오나시스가 서점에 단골로 드나들었다. 은둔의 작가 J D 샐린저도 야구모자를 쓰고 서점에 왔다가 사람들이 알아보면 놀라 도망치곤 했다.
고리는 이 서점 주인인 안드레아스 브라운을 만나며 경력의 전환점을 맞았다. 서점 갤러리에서 고리의 그림을 전시했는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운은 판형이 작은 고리의 책을 금전등록기 옆에 전시하고 손님들에게 열심히 팔았다고 한다.
책방과 작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작가라면 응당 읽어야 쓰는 법. 서점을 찾지 않는 작가란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책방 또한 작가를 통해 영원함을 얻는다. 대표적인 서점이 파리의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다. 서점 단골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 관한 에세이를 썼고, 또 다른 단골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셰익스피어앤드컴퍼니에서 출간했다.
오래 일산에 거주한 소설가 은희경은 문학전문서점 미스터버티고에서 무료 낭독회를 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낭독회를 인상적으로 봤는데, 일산에 문학서점이 생겼으니 지역사회에 보답할 기회라고 여겼다. “세 사람만 있으면 하겠다”며 시작한 낭독회는 1년여를 지속했다.
인문학자 강창래는 “세계를 균열하는” 우리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는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를 출간하며, 독자와 만나는 첫 행사를 김포의 꿈틀책방 2호점인 코뿔소 책방에서 했다. 마치 고리와 ‘고담북마트’처럼 작가와 책방이 서로를 지지하며 오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책방에서 오랫동안 강독 모임을 이끌고 있고, 꿈틀책방 이숙희 대표는 “책을 큐레이션하고 손님들에게 소개할 때 강창래 작가가 쓴 책들이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뉴욕의 고리, 일산의 은희경, 김포의 강창래 작가처럼 남다른 인연을 맺는 작가와 지역 책방의 이야기를 더 듣는 날을 고대한다. 작가와 책방이 모두 살 수 있는 길이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