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버티는 추경’이 반복되면서 ‘증세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가 12조원 규모의 필수 추가경정예산(추경) 재원 상당 부분을 국채발행에 의존하면서 재정 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어두운 세수전망과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 속에 6·3 대선 이후 ‘포스트 추경’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세입 확충 방안에 대한 논쟁도 본격화하고 있다.
2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추경 재원 중 8조1000억원을 적자성 국채발행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추경안 반영 시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은 기존 2.8%에서 3.2%로, 국가채무는 GDP 대비 48.1%에서 48.4%로 늘 전망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실시한 16차례의 추경 중 9차례는 적자성 국채를 통해 재원을 마련했다. 국채 없이 추경이 편성된 건 초과 세수가 대규모로 발생한 2016년, 2017년, 2021년, 2022년 4차례에 불과하다.
재정부담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재정 당국은 증세에는 소극적이다. 김윤상 기재부 제2차관은 지난 17일 추경 브리핑에서 이번 추경 재원과 관련해 “이 정도 (국채발행) 규모는 국채시장에 크게 어떤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필요하면 기금변경 등 추가적 재원보강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슈퍼 추경’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사이에서도 증세를 둘러싼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18일 ‘민주당 대선 경선 첫 TV 토론회’에서 “경제 상황이 너무 어려우므로 정부의 부담을 민간에 떠넘기는 증세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현 단계에서는 ‘조세 및 지출 구조조정’이 대안이라는 것이다. 반면 김경수·김동연 후보는 조세지출 조정만으로는 재정 확보가 어렵다며 감세 기조에 선을 그었다.
문제는 이번 추경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평가 속에 ‘2차 추경’이 현실화하면 재원이 또다시 국채발행에 기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발 관세 전쟁과 내수 침체 등으로 올해 세수 전망이 어두운 탓이다. 일각에서는 2차 추경 규모가 34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경우 전체 국가채무 중 적자성 채무 비중이 올해 70%를 넘어설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2차 추경 역시 국채 발행으로 조달하게 되면 국채 금리 상승은 물론 국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중장기적으로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양 교수는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 증가와 R&D·미래 산업 투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고려하면 단순히 기존 지출을 줄이는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재정 운용이 어렵다”며 “정치적 부담으로 단기적 증세가 쉽지 않더라도 잠재성장률이 일정 수준을 넘기면 시행하는 ‘조건부 증세’와 같은 타협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