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년 만의 환안제… 종묘 정전, 5년 만에 위용 드러내

입력 2025-04-21 01:11
조선 왕과 왕비,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주 환안제 행렬이 20일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서 종묘 정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종묘 정전은 이날 5년 만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공개됐다. 연합뉴스

20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세종대로. ‘종묘 정전 환안제’라고 쓰인 대형 깃발을 앞세운 전통 의례 행렬이 등장하자 시민들이 대로로 모여들었다. 창덕궁 옛 선원전에 임시 봉안했던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를 보수공사를 마친 종묘 정전으로 다시 옮겨가는 환안제 행렬이었다. 행렬은 창덕궁 금호문에서 출발했다.

‘현종대왕·숙종대왕’ 등 왕 이름이 적인 깃발을 앞세우고 향용정(香龍亭·향로와 향합을 운반하는 정자 모양 가마), 신연(궁 밖에서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이 차례 차례 뒤따르는 행렬이 10여분 이어지며 장관을 연출했다. 60대 여성 이모씨는 “세종문화회관 콘서트에 왔다가 귀한 구경을 하게 됐다”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행렬은 종로를 거쳐 종묘까지 총 약 3.5㎞ 구간을 행진했다.

환안제는 ‘종묘 영녕전증수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제작된 신여(궁 안에서 왕의 신주를 운반하는 가마)와 신연, 향용정 등 가마 28기와 말 7필, 해를 가리는 일산과 악기를 연주하는 취악대까지 동원돼 엄숙하면서도 흥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환안제가 치러진 것은 1870년(고종 7년) 이후 155년 만이다.

종묘 정전은 이날 5년 만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외부에 위용을 드러냈다. 종묘 정전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사당으로 조선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종묘 정전은 태조 이성계가 1395년 창건한 이래 전란으로 인한 소실과 개건축, 증축 등을 거치며 처음의 7칸 건물에서 한국에서 가장 긴 19칸 건축물이 됐다. 직선을 길게 그은 것 같은 독특한 형태가 주는 장엄미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5년 국보로,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요 부재의 노후화, 구조적 균열, 기와의 탈락, 월대의 파손 등이 확인돼 국가유산청은 2020년부터 수리를 진행했다. 1991년 이후 약 30년 만에 200억원 규모가 투입된 이번 수리의 핵심은 길이 100m가 넘는 지붕이다. 기존에는 앞쪽에는 공장제 기와, 뒤쪽에는 수제 기와를 얹어 하중이 한쪽으로 쏠리는 문제가 있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제 기와 약 7만장을 제작해 모두 교체했다.

기와 제작은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김창대 보유자가 주도했다. 김 제와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은질, 붉은질 등 5가지 원토를 배합해 흙을 만들고 암키와, 수키와를 만들어 건조하기까지 많게는 30여 단계를 거쳐야 한다”면서 “와통 물레에 기와 한 장 한 장을 성형한 뒤 가마에 굽기 위해 200번 이상 불을 땐 것 같다"고 말했다.

기와를 잇는 작업은 국가무형유산 번와장 이근복 보유자와 이주영 전승교육사 부자가 맡았다. 정전 앞에 깔려 있던 시멘트 모르타르는 걷어내고 수제 전돌(벽돌 모양으로 구운 흙)을 깔았다. 정전을 받치는 넓은 기단 형식의 월대 석축도 일부 보수했다.

오후 4시, 마침내 환안제 행렬이 종묘 정전에 도착했다. 오후 6시 30분부터는 태조부터 순종까지 신위가 다시 모셔진 정전에서는 보수가 완료되었음을 고하는 고유제가 치러졌다. 고유제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주관으로 약 2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전통 절차에 따라 봉행됐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