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여개 희귀질환 중 치료 5~10% 뿐… 그래도 포기하면 안돼”

입력 2025-04-21 23:20 수정 2025-04-21 23:20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의료진도 포기하지 않을 테니, 환자와 가족들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희귀질환 극복의 여정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단된 희귀질환은 약 7000~8000개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선 유병 인구 2만명 이하 혹은 진단이 어려워 유병 인구를 알 수 없고 적절한 치료법이 없는 경우 희귀질환으로 정의된다. 이런 희귀질환이 매년 100개 이상 새로 등장하고 약 5만명의 환자가 신규로 발생하고 있다. 국내엔 약 50만~100만명이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진단이 늦어지거나 아직 진단되지 못한 ‘미규명 질환’도 있어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다.

채종희 서울대병원 임상유전체의학과 교수는 최근 국민일보와 인터뷰에서 “희귀질환은 80%가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하고 ‘신생 돌연변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그 원인을 부모나 가족에게 돌려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희귀질환 진단까지의 힘겨운 과정을 지칭할 때 기존의 ‘진단 방랑’ 대신 ‘진단 여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진단의 완성은 곧 치료로 향하는 길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자는 의미라고 했다. 국내 희귀질환 연구·치료의 권위자로 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에게 희귀질환에 대한 궁금한 점들을 들어봤다.

-희귀질환의 원인은.

“매우 다양한데, 약 80%는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생한다. 일부 희귀질환은 유전자 이상과 관련이 많지 않은 경우도 있고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수도 있다. ‘신생 돌연변이’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진단이 왜 어렵나.

“증상 자체의 복잡성과 다양성, 시간에 따른 증상 변화, 그리고 이런 다양하고 복잡한 질환을 보는 의사 수의 부족, 어려운 의료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실제 희귀질환 자체가 어려운 발병 기전을 갖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희귀질환의 수는 많고 환자는 매우 드물어 일반적인 의료 환경에서 환자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비특이적 임상 양상을 보이는 희귀질환은 평균 6년 이상의 ‘진단 여정’을 밟는다. 2010년 이후 도입된 다양한 유전체 검사를 통해 원인 유전자 발굴과 진단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 치료 동향은.

“희귀질환에서 진짜 완치 개념의 치료를 할 수 있는 경우는 5~10% 정도다. 대표적인 게 근육에 힘이 점차 빠지는 ‘척수성 근위축증(SMA)’으로 스핀라자, 졸겐스마 같은 유전자 치료제가 도입돼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또 기존엔 치료가 불가능했던 여러 희귀질환을 대상으로 근치 혹은 기전 기반의 맞춤형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이 활발해졌다. 세계 각국에서 희귀질환 치료제는 ‘패스트 트랙’을 통해 빠르게 도입하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채 교수는 “치료법이 없는 90~95%에 대해서도 질환을 관리하고 환자 돌봄의 영역을 효율화하는 것 또한 치료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서 “당뇨병 등 만성질환처럼, 희귀질환도 돌봄과 관리를 잘해서 삶의 질을 조금 더 높일 수 있다”고 했다.

-희귀질환에 대해 잘못 알려진 부분이나 오해가 있다면.

“희귀질환은 유전자의 이상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부모 누군가의 잘못으로 유전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가족력이 있는 유전 질환과 유전자 질환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 원인을 부모나 가족에게 돌리지 않아야 한다.

또 첫 아이가 희귀질환이라고 둘째도 희귀질환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와 함께 둘째 출산 문제를 잘 상의하고 대처하면 건강한 아이를 가질 수 있다.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고 해서 희망 없이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현재 치료되지 않더라도 잘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등 효과적인 돌봄을 통해 환자와 가족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다.”

-희귀질환자와 가족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희귀질환은 의료진, 연구자, 환자, 가족이 모두 한 팀으로 대응해야 한다. 2인3각 경기처럼 한 사람이 넘어지거나 포기하고 발을 빼면 절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극복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말고 함께 가야 한다. 처음에는 더딜 수 있지만 더 오래, 더 멀리 갈 수 있다. 또 현재 진단을 받지 못했다고 병원 다니는 것을 중단하지 않길 바란다.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연구는 마치 생물처럼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서 전문가와 정기적으로 만나 환자의 증상 변화 등을 잘 상의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나 사회적 지원에 대한 생각은.

“희귀질환 연구나 치료제 개발은 장기간의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짧은 연구 기간만으로 치료제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 즉 진단, 발병 기전 연구,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 등을 기본으로 하는 기초 연구가 뒷받침되는 상황에서 치료제 연구가 이어져야 한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연구비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인 연구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가족의 3000억원 기부로 시작된 ‘소아암·희귀질환지원 사업’은 희귀질환 연구에 기반한 환자 지원 시스템으로, 정말 뜻깊다.”

채 교수는 “하지만 희귀질환 연구의 다양성과 깊이를 생각하면 더 많은 정부 자원이 투입돼야 한다. 아울러 가족들의 환자 돌봄에 따르는 여러 사회적 비용 지원과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