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일본의 ‘재무성 해체’ 시위

입력 2025-04-21 00:36

일본에서 보기 드문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급격한 고물가에 생활고가 확대되자 재무성 해체를 외치며 시위를 하는 단체가 급증하고 있다. 처음에는 “젊은이나 서민 생활고의 원흉이 긴축 재정을 주도하는 재무성”이라는 주장에 공감하여 몇 십명씩 모였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소비세 폐지를 주장하는 한 여성이 X(옛 트위터)에서 시위 참여를 호소한 것을 계기로 ‘재무성 해체’ 시위는 몇 천명 규모에 이르렀다. 국민이 악성 인플레이션에 괴로워하는데 긴축 재정을 계속하는 재무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시위를 시작한 주최자는 이전부터 정부나 재무성의 재정 운영을 비판한 평론가나 정치단체 등이다. 이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서민 생활이 고통스러워진 원흉은 재정지출이나 감세를 꺼리는 재무성이라고 생각하고 정부의 재정재건 노선 전환과 소비세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후지이 사토루 교토대 교수는 “시위는 일어날 만해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일본은 최근 30년간 0%대로 물가가 안정돼 왔다. 그러나 2022년부터 물가가 상승하고 임금은 오르지 않아 생활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총무성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3% 가까이 상승했고, 특히 식료품·에너지 가격이 급상승했다. 전기세는 지역에 따라 2년 전의 1.5배에 이르렀고, 쌀 가격은 90% 이상 올랐다. 그런데도 재무성은 재정건전화를 이유로 증세나 긴축만 주장하고 있다.

이번 시위가 과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이데올로기보다 생활고, 소외감, 정책에 대한 위화감 등의 불만이 참여 이유라는 점이다. 1990년대 이후 종종 있었던 재무성 공격은 권력으로 정치가나 규제를 조종하는 재무성을 바꾸면 일본도 바뀐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평소의 울분을 토하고 돈을 풀라고 강요할 뿐 해체 후의 구상이나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위의 추진력이 과거 권력에 대한 반대에서 생활 노선으로 바뀐 것이다.

일본 국민들은 왜 지금 재무성 해체를 요구할까. 지난해 총선에서 약진한 국민민주당이 “감세로 국민의 실수령액을 늘리겠다”는 주장으로 시선을 끌었고, 감세 상한액 인상이 지지부진해 진행되지 않는 이유가 크다. 그런 주장을 방해하는 것이 재무성이라는 ‘재무성 악인론’이 크게 공감을 얻은 것이다.

이에 대해 재무성 관료들은 건전재정 확보가 재무성의 사명으로서 법률에 정해져 있으며, 재정재건을 말하는 것은 결국 정의감이라고 반박한다. 국민이 싫어해도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정치가가 대중 영합주의적 정책을 밝히기 때문에 재무성의 반대 주장이 더 두드러진다고 강조한다. 재무성으로서는 시위대의 비판이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과거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은 다른 부처 예산을 심사할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에 걸쳐 재무성은 예산과 정책 결정권을 완전히 잃게 됐다. 지금도 프라이드는 높지만 정치권의 말을 거의 실행만 하는 형태가 됐다.

현실은 어떤가. 일본은 적자재정을 계속하면서 1200조엔의 빚이 쌓였지면 호경기는 실현되지 않았다. 금리 5%를 가정하면 1200조엔에는 매년 60조엔의 이자소득이 발생한다. 재정적자를 방만하게 쌓아올려 매년 60조엔을 벌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과 같다. 시위의 불길은 그치지 않고 4월 이후도 전국 각지에서 계획되고 있다. 물론 극단적인 단순화나 황당무계한 주장도 많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번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재무성이나 정치가는 이러한 불만에 답을 찾아야 할 분기점에 서 있다.

이명찬 전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