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4년 중임제 개헌은 ‘개악’이다

입력 2025-04-21 00:32 수정 2025-04-21 00:32

제왕적 대통령제 개혁하려고 오히려 권한 강화시키는 모순
미 대통령제 권력분립 이유는 주정부·상하원 강력하기 때문
4년 중임제·동시선거 실시는 ‘여당독재 촉진 헌법’ 될 것

다시 개헌론이 활발하다. 개헌론자들은 ‘87년 헌법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4년 중임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정말 그럴까.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1987년 6월항쟁의 산물이다.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의 야당 세력은 4년 중임제를 주장했다. 노태우의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주장했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타협의 산물로 5년 단임제가 채택됐다.

이후 민주화운동 세력은 개헌 필요성이 제기될 때마다 4년 중임제를 대안으로 주장했다. 이때 4년 중임제는 대통령 임기의 ‘단기주의’에 대한 해법이었다.

대통령 임기가 너무 짧기 때문에 더 길게 보장하자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4년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추진했다.

2016~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다시 개헌론이 제기됐다. 이때부터 개헌론의 맥락이 달라진다. ‘제왕적 대통령’ 때문에 개헌 필요성이 제기된다. 현재 일부 언론,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선 후보들 역시 제왕적인 대통령 권한 때문에 개헌을 주장한다.

첫 번째 퀴즈.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 늘리면 대통령 권한은 더 커지는 것일까, 더 작아지는 것일까.

당연하게도 4년 중임제(임기 8년제)에서 대통령 권한은 훨씬 더 커진다. 결국 4년 중임제 개헌론은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을 8년으로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꼴이다. 더욱 황당한 주장은 2028년 총선과 대선의 시기를 맞추는 ‘동시 선거론’이다.

여기서 두 번째 퀴즈.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동시 선거로 뽑으면 대통령 권한은 더 강해질까, 약해질까.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다. 동시 선거를 실시할 경우 대통령 당선자를 배출하는 정당이 총선에서도 압승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4년 중임제로 대통령 권한을 현행보다 2배로 강화해 놓고, 동시 선거를 통해 ‘여당 압승’을 도와줘 대통령 권한을 4배로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꼴이다.

도대체 개헌은 왜 하려는 것인가. 임기의 단기주의 때문인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때문인가. 현행 4년 중임제 개헌론은 앞뒤가 하나도 안 맞는, 그야말로 ‘졸속의 극치’다.

4년 중임제 개헌은 ‘개악’이다. 2028년 동시 선거론은 ‘개악 곱하기 개악’이다. 만에 하나 실제 헌법 개정을 통해 4년 중임제와 대선·총선 동시 선거가 제도화되면 ‘여당의 독재촉진 헌법’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행정부와 의회의 동시 선거를 우리는 지방선거에서 경험하고 있다. 지방선거는 단체장에서 승리하는 쪽이 지방의회도 싹쓸이한다. ‘동시 선거’ 방식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기원은 미국이다. 미국도 대통령 임기가 4년 중임이고, 국회의원 선거를 동시에 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제와 한국 대통령제는 DNA와 역사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3중, 4중의 권력분립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

예컨대 대통령 임기는 4년이지만 상원의원은 6년이다. 게다가 3분의 1씩만 교체한다. 상원은 대통령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대통령을 실제로 견제할 수 있다. 미국에서 예산은 전적으로 의회 권한이고, 행정부는 법안도 발의하지 못한다. 주 정부는 독자적인 헌법과 법률, 군대와 경찰을 갖고 있을 정도다. 미국은 ‘분권형’ 대통령제다. 강력한 의회, 강력한 상원, 강력한 주 정부가 받쳐주고 있다.

만일 한국이 4년 중임제였다면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수 있었을까. 아마 둘 다 안 됐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여당 의원들이 동참해야 가능한데, 대통령의 영향력은 훨씬 더 강력했을 것이다.

5년 단임제는 의도하지 않게 ‘한국형’ 권력분립을 만들어냈다. 단임제하에서 임기 후반이 되면 여당은 둘로 쪼개진다. 여당의 ‘현재 권력’인 대통령과 여당의 ‘미래 권력’인 차기 대선 후보로 갈라진다.

결과적으로 한국형 권력 분립은 ①여당의 현재권력 ②여당의 미래권력 ③야당의 미래권력 사이에 작동하게 된다.

박근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은 ‘87년 헌법의 한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두 번에 걸쳐 ‘87년 헌법’이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