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우산이 다 사라지는 때

입력 2025-04-21 00:35

신발장에 우산이 하나도 없는 시기가 온다. 우산을 잘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잘 빌려주기도 한다. 운전하고 나간 날, 갑자기 비가 내릴 때 우산을 준비 안한 지인에게 챙겨간 우산을 건네준 적이 더러 있다. 나도 그런 식으로 우산을 얻어올 때가 많다. 우산은 내가 산 적 없이도 하나씩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오늘은 비가 많이 왔다. 신발장을 열었는데 그때가 온 것이다. 우산이 없는 때.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 트렁크에 우산이 있다는 게 생각났지만,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는 것이 귀찮아서 양산을 꺼내 쓰고 나갔다.

어릴 적 아버지는 생일 선물로 몇 번이나 우산을 사주셨다. 우산을 잘 잃어버리는 내 습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신발장에 들어 있는 아무 우산이나 들고 나가는 내가 좀 더 예쁜 우산을 썼으면 하셨던 것 같다. 크기가 크고 손잡이가 정성스레 만들어진 빨간색 우산이거나 우산 안쪽에 멋진 그림이 페인팅되었거나, 강한 바람에도 뒤집어지지 않는 기능이 탑재된, 아무튼 남들과 조금 다른 우산들이었다. 오늘 쓰고 나간 양산은 내가 엄마에게 선물한 것을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엄마가 내게 다시 주셨다. 베이지 바탕에 흰색 땡땡이 무늬가 있는 우산이었는데, 엄마는 그 양산이 너무 예뻐서 딸이 쓰는 걸 바라셨다. 양산을 쓰지 않는 나는 그냥 받아와서 고이 모셔두기만 했다.

비가 그친 밤, 나는 우산을 검색해서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것처럼 큰 빨간 장우산을 골랐다. 옛날의 빨간 장우산은 친구에게 쓰고 가라고 빌려준 적이 있고 아버지의 선물이니 꼭 돌려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돌려받진 못했다. 한 번 말을 꺼낸 적은 있었지만, 두 번은 꺼내기 그랬다. 우산은 그런 물건인 걸까. 자주 잃어버리는 게 당연하게 자주 생기는 게 당연한. 귀한 느낌 같은 건 받아본 적이 없는. 그럼에도 딸에게 우산 선물을 즐겨 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을 떠올려보는 밤이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