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14) 화곡제일교회 개척… 하나님과 약속한 두 번째 사역

입력 2025-04-21 03:04
강영애(왼쪽 첫번째) 목사가 충남 아산 온양교회에서 첫 집회를 인도한 후 교회 담임목사 부부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강 목사 제공

세 사람은 내가 주머니 속 담뱃갑을 발견한 것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그들에게서 담뱃갑을 건네받아 곧장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여러분, 제 눈앞이 갑자기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차듯 뿌옇게 흐려졌는데 앞줄에 앉은 세 분의 장로님 주머니에서 이 담뱃갑이 나왔습니다. 담배처럼 우리 마음에 품은 죄들이 있을 겁니다. 회개합시다.”

금요 철야예배는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났다. 그 시간엔 차편도 끊긴 터라 교회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다음 날 새벽기도회까지 인도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도 외면할 수 없었다. 새벽기도회 후 아침 식사까지 대접받고서야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교회 앞까지 배웅을 나온 장로들이 문 앞에 서서 공손히 “담임목사님으로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집회를 인도해준 것에 대한 인사치레쯤으로 여기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온양교회 담임목사가 직접 운전해 화곡동 집까지 나를 태워다 줬다. 가는 내내 교회 이야기를 하던 그는 자신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사임이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전날 인도한 금요 철야예배에서 장로들이 잘못을 회개하며 교회 마룻바닥이 꺼지도록 뜨겁게 기도했고 그 열기가 새벽예배까지 이어져 더 많은 교인이 모여 기도하더니, 장로들이 담임목사의 사임을 철회시켰다는 것이다.

온양교회 담임목사는 조만간 다시 집회에 초청하겠다는 뜻을 전했지만, 나는 화곡제일교회 개척을 앞두고 있었기에 정중히 사양했다.

집회를 다녀온 뒤 온양교회 자매 두 명이 나를 찾아왔다. 집회에서 큰 감동을 받아 찾아왔다고 했다. 이들은 화곡제일교회의 창립 멤버가 됐다. 인천 복음교회를 사임하고 한 달쯤 지난 1974년 가을 하나님께 서원했던 두 번째 교회, 화곡제일교회 사역이 시작됐다.

성도라고는 남선교회장 부부와 그들이 소개한 여 권사, 인천 복음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던 수자 자매, 온양에서 올라온 두 자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전부였다. 어느 날 예배가 끝난 뒤 수자는 “나를 꼭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은 헤어진 남편의 큰 누나, 즉 큰 시누였다.

그는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아들을 보러 가던 길에 전봇대에 붙은 교회 전단에서 ‘강영애 전도사’라는 이름을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길을 돌려 교회를 찾아왔다고 했다.

남편과 헤어진 후 시댁 식구를 다시 만난 건 처음이었다. 큰 시누는 동생과 달리 자신은 교회를 다닌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교회를 찾아와 내 앞에 보자기 하나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흰색과 검정이 어우러진 단아한 한복이 담겨 있었다. 정성껏 직접 지은 옷이라며 “강대상에 설 때 입으라”고 했다.

해가 바뀌어 1975년이 됐다. 화곡제일교회는 아직 교단에 소속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에 올라온 뒤로는 삼각산 산기도를 이어갔다. 교인 두세 명과 함께 또는 혼자서 매주 두세 번씩 올랐다. 그러던 2월 말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두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