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은 정부의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 ‘증원 0명’ 발표에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의 화해 제스처’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지만 차기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투쟁 수위를 높이자는 강경파 입장에 힘이 쏠릴 가능성이 커졌다.
17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만난 의대생 A씨는 정부의 의대 증원 철회 발표에 대해 “해당 정책이 확정이라고 볼 수 있느냐”며 “대통령도 파면돼 없는 상황에서 정부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했다. 서울의 다른 의대 학생 B씨는 “이미 정부와 학교가 등록 기한도 미뤄주는 등 각종 정책을 바꾼 전적이 있는데 누가 믿고 돌아갈까 싶다”고 말했다.
특히 강경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저학년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확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본과 3, 4학년 고학년보다 저학년(예과·본과 1, 2학년) 의대생의 수업 복귀율이 낮은 상황에서 정부의 사실상 백기 투항이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의대생 C씨는 “수업 참여도가 낮은데 정원을 동결한 건 수업까지 참여해야 복귀로 인정하는 교육부의 원칙을 스스로 허문 셈”이라며 “강경파에게 ‘버티면 이긴다’는 잘못된 신호만 남겼다”고 비판했다.
수업을 거부하는 24·25학번 신입생들이 대규모로 유급될 경우 26학번과 함께 3개 학번 1만명이 동시에 1학년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tripling)’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C씨는 “이미 자축하는 강경파 입지가 더 커져 추가로 복귀하려던 학생들마저 복귀를 포기할 것 같다”고 했다.
교육부가 의대 증원을 백지화하면서까지 이들의 복귀를 촉구한 배경에도 학생들의 수업 참여율을 높여 최악의 상황만은 피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현재 의대 교육 여건상 1만명 넘는 의대생들의 동시 수업은 불가능하다. 트리플링이라는 초유의 사태 발생 시 의대 교육이 전면적으로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대생들이 협상력 유지를 위해 ‘수업 거부’ 카드를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수업을 거부 중인 의대생 D씨는 “이대로 돌아가면 투쟁은 끝난다”며 “비급여·실손보험 개편 등 의료 정책에서 손댈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질 테고,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도 불투명해진다”고 말했다. B씨는 “이제 정원 동결을 얻어냈으니 앞으로 필수의료 패키지, 파업권 보장 등 더 많은 것을 얻어내야 의대생들이 복귀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웅희 이정헌 이서현 이찬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