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가 추진했던 의대 증원 정책이 끝내 수포로 돌아갔다. 2026학년도 모집인원은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확정됐고, 2027학년도부터는 차기 정부 몫이 됐다. 의대 증원은 2025학년도에 한정한 ‘일회성 이벤트’에 그쳤고, 의·정 갈등이 이어진 지난 1년2개월은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사 단체의 호언장담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을 뿐이란 평가마저 나온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을 열고 “2026학년도에 한해 대학에서 의대 모집인원을 2024학년도 입학 정원 수준으로 조정하겠다”며 “의대생들은 하루빨리 학업으로 돌아와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의대생들의 ‘등록 후 수업 거부’에 사실상 백기를 든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정부는 2026학년도 모집인원 ‘증원 0명’의 조건으로 수업 복귀를 내걸었다. 의대생들은 제적을 피하기 위해 등록은 했지만 수업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규모 유급을 통해 내년에 2024~2026학번이 모두 1학년이 되는 ‘트리플링’을 유도하는 전략을 택했다.
교육부는 전날 기준 전국 의과대학 40곳의 7개 학년의 평균 수업 참여율이 25.9%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예과 1~2학년은 22.2%, 본과 1~4학년은 29% 수준이었다. 정부가 대규모 유급 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되자 고육책으로 ‘3058명 조기 확정’이란 마지막 카드를 던진 것이다. 교육부는 “국민에게 약속한 수업 복귀 후 3058명 확정이란 원칙을 깬 것은 사실”이라면서 “(이번 결정으로) 더 많은 학생이 돌아올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의대 교육 정상화는 불투명한 상태다. 3058명 조기 확정을 의·정 화해의 계기로 삼자는 의대생도 있지만, ‘버티면 이긴다’면서 새 정부 출범까지 투쟁 수위를 높이자는 강경 기류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학들이 수업 미참여 의대생은 예외 없이 유급시킨다고 경고했지만 의대생 사이에선 ‘정부가 또 물러날 것’이란 낙관론이 팽배하다.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은 적정 의사 수를 논의하는 ‘의료 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 심의한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추계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문제 삼는 데다 ‘의사 수 추계센터 설치’까지 예고하고 있다. 차기 정부도 섣불리 의대 증원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칙론’을 고수하며 교육부와 충돌했던 보건복지부는 기자회견에 불참했다. 복지부는 입장문에서 “3월 초 발표한 2026학년 의대 모집인원 결정 원칙을 바꾸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교육부와의 이견을 감추지 않았다.
의사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도 투쟁의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 의협은 “만시지탄이나 정상으로 돌아가는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오는 20일 예정된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 등 참여를 독려했다.
이정헌 기자,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