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도, 불출마도 말하지 않는 침묵 속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범보수 진영의 유력한 ‘대안’ 후보이자 ‘출마가 바람직하지 않은’ 인물로 동시에 꼽히고 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다음 달 3일 전당대회를 거쳐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될 때까지는 ‘아리송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한 권한대행과의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둔 후보를 선택하면 한 권한대행의 ‘등판’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얘기다. 반대의 경우 한 권한대행이 국정을 떠나 ‘선수’로 뛰어들 가능성은 떨어진다.
구(舊) 여권 관계자는 17일 “여론조사에 ‘한덕수’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보수 지지층 틈에서는 상당히 압도적”이라며 “한 권한대행은 지지자들이 ‘나와라, 나와라’ 해야 나올 사람이지만 모든 가능성을 닫아뒀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구 여권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최근 언행을 경선 ‘당심’을 신중히 탐색하는 모습으로 해석한다. 한 권한대행은 “대선의 ‘디귿’자도 꺼내지 마라” “마지막 소명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출마 일축으로만 해석되진 않는 실정이다. 그는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지명을 단행했고, 최근 민생을 의식한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한 권한대행은 참여정부와 윤석열정부에서 각각 국무총리로 일했다. 그는 “민주화도, 산업화도 공로를 특정 집단이 독식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얘기를 주변에 종종 한다고 한다. 어느 한 진영에 발 디디기보다 있는 대로의 측면을 모두 말하는 식인데, 오히려 양면적이거나 애매한 태도로 받아들여지는 때도 있다고 주변에선 안타까워한다. 한 권한대행은 윤석열정부 내내 총리로 일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반대하고 국무회의의 흠결을 증언한 것도 사실이다.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이런 한 권한대행이 불리한 대선 지형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경륜 있는 경제관료로서 전통적 지지층에 어필하면서도 비상계엄 끝의 대선에서 ‘윤심’ 후보로만 인식되지는 않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아직 출마 여부도 불확실하지만 이미 구 여권에서는 2002년 대선 승리를 낳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사례가 언급되기도 한다. 한 관계자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정당을 초월해 시도됐는데, 당과 정부 간 단일화가 안 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구 여권에서는 한 권한대행의 존재가 막바지까지 더불어민주당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감지된다. 지지 후보가 당내에서 최종 주자로 낙점되지 못할 경우 오히려 상대 정당의 후보를 찾는 현상이 대선마다 왕왕 있었으며, 이때 한 권한대행은 ‘비명’의 대안도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 카드 검토 자체가 현 정당정치의 한계라는 비판도 높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의원 다수가 옹립하고 여론조사 1위를 하면 바로 대선 주자가 되는 것이냐”며 “일종의 꼼수가 국민을 감동시켜 선택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 역시 ‘윤심’의 그늘을 못 벗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정쟁 국면에서는 ‘행정가형’에 대한 선호 현상이 나타난다”면서도 “단기적으로는 외연 확장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시간이 흐를수록 역풍이 불 가능성도 높다”고 분석했다. 최 원장은 “한 권한대행은 계엄 정국의 복판에 서 있던 인물이고, 파격보다는 일시적 현상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공정선거와 과도기 국정을 챙겨야 할 한 대행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며 “이는 신종 ‘난가병’(나인가 착각하는 병), 노욕의 대통령병 중증”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