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패자 되는 관세 전쟁
힘의 논리로 밀어붙인 트럼프
채권시장의 美 국채 투매 등
세계 경제 오랜 시스템에 제동
이런 장치 아직 없는 첨단영역
트럼프 리스크에 무방비 상태
국제 협력 필수적인 AI 시대
그가 최대 위험 인물 될 수도
힘의 논리로 밀어붙인 트럼프
채권시장의 美 국채 투매 등
세계 경제 오랜 시스템에 제동
이런 장치 아직 없는 첨단영역
트럼프 리스크에 무방비 상태
국제 협력 필수적인 AI 시대
그가 최대 위험 인물 될 수도
“광대를 고용했으니 서커스를 볼 수밖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지켜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지난주 이런 문장을 썼다. 때렸다가 접었다가, 포커 치듯 ‘묻고 더블로’를 외치는 그의 관세는 경제 상식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비판하는 글이 외신을 도배했는데,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어리석다(stupid)’였던 것 같다. 한 매체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연구하는(기후변화를 알면서 대처하지 않는 행태 등) 학계에 진단을 청해 “어리석음의 전형”이라 평하기도 했다. 관세 전쟁은 모두가 패자일 수밖에 없는 길임에도 어리석게 자기는 승자가 되리라 믿고 밀어붙인다는 것이 그 분석의 요지였다.
백악관에는 이런 서커스마저 눈부신 정책으로 포장하는 스핀 닥터들이 있었다. 트럼프가 돌연 상호관세 90일 유예로 물러선 지난 16일, “저서 ‘협상의 기술’에 수록된 고도의 기법”(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이며 “처음부터 계획된 전략”(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란 설명을 내놨다. 이들이 머쓱해지기까지 채 몇 시간 걸리지 않았다.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는 “간밤에 채권 시장이…” 하면서 국채 투매 때문임을 인정했고, 향후 관세를 어떻게 결정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본능적으로. 직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획도 전략도 없이 자신의 본능과 직감에 의존하는 의사결정. 어리석음 연구자들이 말하는 어리석은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이었다.
지난 석 달 트럼프가 쏟아낸 기이한 정책과 구상은 헤아리기 버거운데, 뜯어보면 매우 심플하다. 힘과 돈, 두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세계를 상대로 힘을 휘둘러 돈을 챙기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윽박질러 광물을 뜯어내고, 그린란드를 합병해 자원을 먹고, 유럽 한국 일본의 안보와 직결된 군사력을 무기로 ‘보호비’를 챙기려 한다. 거의 모든 나라에 부과한 상호관세는 이런 것을 한꺼번에 해치우려 벌인 큰 판이었다. 힘과 돈 외엔 어떤 가치도 작용하지 않도록 트럼프는 이 판을 설계했다. 동맹을 갈취범 취급하고 무역 질서를 깡그리 무시하며 청구서를 작성했다.
인류 사회가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자유, 인권, 신뢰, 민주주의…. 내밀한 본성은 이익 추구에 있을지언정, 이런 가치의 공감대가 그것을 제어하며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켜 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를 규합한 것도 세계 최강의 힘을 휘둘러서가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메시지에 공감을 끌어낸 결과였다. 이제 그 힘을 손에 쥔 이가 이익 추구의 본성을 한껏 드러내며 철없이 힘을 휘두르는 것이 이 관세 전쟁의 본질이다.
하지만 세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채권 자경단’이라 불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신뢰를 저버린 미국의 국채와 달러를 팔아치웠다. 수십년 얽히고설킨 자유무역 생태계는 주먹구구 관세보다 훨씬 견고해 미국 소비자에게 후폭풍이 닥치고 있다. 트럼프가 관세 전선에서 스스로 물러서고 오히려 중국보다 수세로 몰리는 상황은 오랜 세월 뿌리 내린 세계 경제·교역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였다. 그런데, 만약 그런 제도와 질서가 미처 갖춰지지 않은 영역에서 그의 어리석음이 발동한다면?
구글은 최근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AGI(범용인공지능)가 2030년 이전에 개발되리란 보고서를 냈다. 일론 머스크, 샘 올트먼, 벤 뷰캐넌(바이든 백악관 AI 보좌관) 등 많은 전문가의 예측이 ‘트럼프 임기 중 AGI 출현’이란 지점에서 일치한다. AGI는 인류 문명을 송두리째 바꿀 게임체인저로 불린다. 모든 빅테크 기업이 먼저 만들려고 속도전을 벌이는 동시에 그것을 개발하는 이들이 먼저 인류의 존속이 걸린 가공할 위험을 경고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 안전장치는 한 나라가 갖춘다고 될 일이 아니어서 국제적 기준과 규범을 세우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적인데, 지금 트럼프는 세계를 약육강식·각자도생의 정반대 길로 몰아가고 있다.
챗GPT에게 트럼프 임기 중 AGI 출현이 걱정스러운 이유를 물었더니, ①일방주의 ②예측 불가 성향 ③국제적 신뢰 상실 ④패권 강화에 활용할 가능성 등 긴 리스트의 답변이 돌아왔다. 관세 전쟁서 드러난 리더십의 실체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만약 이 불길한 가정이 현실화한다면, 우리는 트럼프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