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이적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누가복음 5장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기적 역시 오늘 본문 17절에 명시하듯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일어났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적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 퍼지자 수많은 무리가 모였고 그들 가운데는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 공동체 안에도 온전한 믿음의 제자들이 있는 반면(20절), 단순히 무리와 군중으로 머무는 신앙인이 많다고 지적하며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무리’와 ‘제자’를 구분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기적 자체를 구하는 기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실 때 참된 기적이 일어난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본문 19절에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은 예수님께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누가는 그 이유가 바로 “무리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무리는 예수님께 호의적인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놀랍게도 예수님은 오히려 이들을 피해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 즉 척박한 땅인 ‘광야’로 물러가셨습니다.(16절) 이는 단순히 피곤해 쉬거나 잠시 피하신 것이 아니라 그 무리 자체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꺼리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무리의 두 가지 유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첫째 ‘수없이 많이 모인 군중’입니다. 이들은 때로 진정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가로막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말씀의 자리에 ‘구경꾼’으로 참석하며 ‘나는 이 자리를 채웠으니 됐다’는 안일한 태도는 비록 외적인 부흥을 일으켰을지는 몰라도, 실제로는 교회의 영적 성장을 병들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 유형은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에 능통하고 성경 지식도 풍부하며 겉으로는 경건하고 헌신된 삶을 살았지만, 정작 눈앞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죄 사함을 받는지 잘 알면서도 구원의 주님 자체를 바라보지 못한 또 다른 형태의 무리였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교회에 나와 수십 년간 예배하고 기도하며 응답과 치유를 구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그런 무리들을 피하셨습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우리도 말씀을 듣고 기도 응답을 기대하면서도 여전히 혈기와 자존심, 세속적 태도로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 주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합니다.
충격적이게도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몬 이들도 바로 그 ‘무리’였다는 점입니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께 침을 뱉고 돌을 던지며 조롱한 이들은, 다름 아닌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병 고침을 바라던 바로 그 무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풍병자 사건에서 주목할 핵심은 병자가 단순히 병 고침 받은 것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그의 삶에서 가장 절실했던 것은 육신의 회복이 아니라 ‘내가 예수께로 나아가면 주께서 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20절)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박재인 부목사(주님기쁨의교회)
◇주님기쁨의교회는 사랑의교회의 기도와 지원 아래 개척됐습니다. ‘제자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생명 공동체’의 비전을 가지고 서울 송파와 잠실 지역을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