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를 임신했어요.” 이 소식을 전하자 많은 분이 “셋은 다르다”면서 차원이 다른 육아의 세계에 들어설 거라고 응원을 보냈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막상 셋째를 낳고 3주쯤 지나니 그 말이 실감 났습니다.
출산 전 둘째와 병원에 갔을 때 한 아이는 엄마가 안고 두 아이는 아빠 손을 잡은 가족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셋은 정말 다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부모가 각각 한 명씩 감당하는 걸 넘어선 분주함은 단순한 수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와 단둘이 외출했다가 똥강아지 같던 아이가 제법 자란 모습에 놀랐습니다. 말귀도 잘 알아듣고 설명하면 고집도 꺾더군요. 첫째와 둘째는 24개월, 둘째와 셋째는 21개월 터울이라 둘째가 자라는 모습을 찬찬히 지켜볼 새 없이 시간이 흘렀다는 게 문득 미안했습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정작 아이의 성장을 바라보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건 아닐까….’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신생아 육아로 여유를 잃은 엄마, 동생이 생겨 혼란스러운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생기고 특히 첫째 딸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러던 중 다시 말씀이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고 시편 127편은 “자식은 여호와의 기업”이라 하셨지요. 특히 시편 51편 16~17절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자녀가 하나님의 복이고 선물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제 안의 이기심과 감정적 연약함을 이처럼 깊이 자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이 한두 명일 땐 제힘으로 육아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셋째가 태어난 뒤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감당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것, 그것이 인생에서 누릴 최고의 복임을 믿습니다. 치유와 회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부족하지만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의지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오늘도 자녀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부모님 위에 하나님의 평강과 축복이 충만히 임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