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돈 벌러 고향 떠난
여성들…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지역사회 일자리 문제
여성들… 지금도 달라지지
않은 지역사회 일자리 문제
“저희는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 받으며, 더구나 2만명이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인 여성입니다. 근로기준법이 없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 작업을 강요합니까? 미싱사는 모든 노동 중 제일 힘든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1969년 22세의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하루 15시간 ‘미싱’ 앞에 앉아야 했던 18세 여성들, 하루 16시간 일하고 90원 남짓 받던 15세의 ‘시다’ 소녀들. 전태일은 이들을 “가난을 이기기 위해 몸을 던진 존재들”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 산업화는 이러한 여성 노동에 빚지고 있다. 그들은 ‘가족과 국가를 위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을 감내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 흘렀다. 여성의 교육과 역량은 향상됐으며, 많은 여성이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여전히 많은 여성은, 특히 지방의 청년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갖지 못해 지역을 떠나야 하는가.
2022년 시·도별 청년인구 전출입 현황을 보면 서울, 인천, 대전, 세종, 경기도 지역은 순유입이고 그 외 지역은 유출이 더 많다. 광역시까지도 청년인구 순유출이 심각해 이 문제 해결이 청년 정책의 중심 과제가 됐다. 그 핵심에는 일자리 문제가 있다. 청년 고용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지역 인구 이동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청년여성의 이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지역에서 청년여성은 정규직보다 계약직이나 시간제 일자리에 더 많이 머문다. 그래서 근속 비율이 낮고 퇴사율이 높다. 처음부터 주된 소득자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설계된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노동을 여전히 보조적인 것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가 지배하는 직장이 많아 거기 적응하는 것이 고유 업무만큼이나 고되다.
여성의 교육 수준은 높아졌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도 많아졌다. 그러나 그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은 턱없이 부족하다. 운 좋게 취업을 해 실력을 쌓더라도, 이동할 수 있는 더 나은 자리를 찾기 어렵다. 한계를 돌파할 기회도, 사다리도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많은 청년여성은 고향을 등진다.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 차별이 줄었고, 심지어 남성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불만까지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방의 청년여성은 임시직이나 계약직 위주의 불완전한 고용, 성차별적인 승진구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일과 삶의 양립이 불가능한 조직문화에 내몰린다. 그 모두를 견뎌내더라도 새로운 기회가 아니라 비슷한 임시직의 반복이 기다린다.
이미 가시화된 지방소멸 문제는 위계적 지역개발과 엘리트 중심의 성장전략, 승자독식의 경쟁구조가 맞물려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한국 사회의 발전 방정식 자체에 뿌리 깊은 불균형이 자리하고 있기에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그 안에서도 청년여성 문제는 더 심각하다. 청년여성의 지방 이탈은 단순한 인구 이동이나 인구 감소의 부작용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의 성별 불평등, 지방 일자리의 질적 낙후,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구조적 결과다.
지역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기본 전제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기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여성 친화형 일자리 정책을 도입하고 돌봄과 일이 양립할 수 있는 문화를 확산해야 한다. 왜 청년여성들은 지역에 남지 못하는가. 지금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떠나는 것은 비단 청년여성만이 아닐 것이다. 결국은 지역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허영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