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게는 어쩌다 아스팔트에 올라왔나

입력 2025-04-18 00:34

건널목 앞에서였다. 눈앞에 검고 손바닥만 한 뭔가가 움직거렸다. 고개 숙여 보니, 게였다. 게가 어쩌다 도로까지 올라왔나. 나름대로 과정을 추론해 봤다. 첫 번째 유력한 가능성은 비정기적으로 오는 수산물 트럭이다. 그 자리는 아저씨가 트럭을 몰고 와 이따금 수산물이나 제철 채소를 팔곤 하는 장소다. 지난주에는 멍게와 머위 따위를 스티로폼 상자 위에 올려놓고 팔았다. 게 옆에 홍고추도 한 개 떨어져 있는 걸로 보아 그 트럭에서 떨어져 나온 것일지 모른다.

두 번째 가능성은 하천에 사는 게가 길을 잘못 들어 도로까지 올라온 것이다. 길을 건너면 인공폭포로 이어지는 하천이 나온다. 거기서 드물게 민물 게를 보기도 했으니, 전혀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차가 씽씽 달리는 건널목을 게가 무사히 건넜을 확률은 낮다. 다리를 세어보니, 집게발 두 개, 양옆으로 네 쌍의 다리가 붙어 있다. 어느 것 하나 부러지지 않고 멀쩡했다.

엄지와 검지로 게를 조심스레 집어 올렸다. 발이 헐렁헐렁하지 않고 빳빳했다. 게는 버둥거리며 저항했다. 근처에서 종이상자를 가져와 게를 담았다. 꼼짝하지 않아서 건드려 보니, 슬금슬금 구석으로 도망쳤다. 집 옆의 하천은 한강 중류로 연결된다. 철새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천적의 눈에 띄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게가 숨기 좋을 법한 돌을 물색했다. 상자를 기울였더니 게가 기다렸다는 듯이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컴컴한 물가에서 하는 짓이 수상해 보였는지, 먼발치에서 나를 지켜보던 어떤 할머니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거기서 뭐 했어요?” 말을 고르는 사이, 할머니가 다시 대답을 재촉했다. 이 무슨 독립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인가. 나는 은근히 장난기가 돌아 할머니의 궁금증을 쉽게 해소해 주고 싶지 않았다. “뭐 좀 했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빈 상자를 내보였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