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정말 ‘반려’의 대상이 된 걸까

입력 2025-04-18 02:11
게티이미지뱅크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이다. 집안에 들인 동물들은 애지중지 가족이 돼 있다. 길에 사는 동물들을 위해 밥을 챙겨주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수의사이자 사육 곰을 구조하고 돌보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 활동가인 저자는 “기르던 동물을 잡아먹던 시절보다 동물과의 거리는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진 것 같다”고 말한다. 책은 인구 대다수가 도시에 사는 나라에서 도시인과 함께 살거나, 어쩔 수 없이 인간 주변에 살게 된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다양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를 가장 섬뜩하게 만드는 질문은 동물들을 향한 인간의 사랑과 돌봄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 제기다. 저자는 “일방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를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가리고 있는 현실에서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류의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의 ‘애완동물’은 지금은 ‘반려동물’이 됐다. ‘인간의 즐거움이나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이 서로 사랑과 혜택을 주고받는 동반자적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반려’라는 말을 쓴다고 해서 온전히 동물들이 ‘반려’의 대상이 된 것일까. 저자는 ‘반려’라는 말에 가려진 현실을 폭로한다.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반려종이 된 개’의 현실을 살펴보자. 개는 더 이상 주인과 독립된 존재로 인정되지 않는다. 늙어 죽을 때가 되어도 여전히 ‘귀여운 아기’여야 한다. 귀여워야 하는 존재가 돼버린 개는 귀여움 이외의 쓸모는 없어져 평생 어린 동물 취급을 받는다. 성숙한 개라면 당연히 성욕이 있을 테지만 물리적으로 성기를 잘라내 성욕을 제거한다. 개도 스스로 어른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게 돼 죽는 날까지 아기처럼 군다. 완전히 성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적·행동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특징을 성인기까지 유지하는 유형성숙(幼形成熟·neoteny)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은 돌봄의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면서 “동물을 귀여워해야 한다는 강박은 각 동물이 가진 사정을 뒤틀어 정형화하고 특정한 방식의 사랑을 강요한다”고 말한다.

한국만의 독특한 애견문화도 개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다른 나라의 인기 품종에는 보통 큰 개와 작은 개가 섞여 있는데 한국은 70% 이상이 초소형견이라고 한다. 몸무게 50㎏쯤 되는 늑대의 후예가 5㎏에 못 미치는 동물이 되었을 때는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것이 소형견에서 주로 발생하는 ‘슬개골 탈구’라는 질병이다. 한국에서는 특정 품종의 개를 선호한다. 품종견 또는 순종견으로 불리는 동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근친교배가 필수적이다. 자연에서 진화는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면서 질병의 발현 가능성을 낮추는 쪽으로 일어나지만, 근친교배 과정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귀여운 외모를 얻기 위해 병들고 아플 수밖에 없는 개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개를 개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면서 “그 존중은 개가 가족이거나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개라서 받는 존중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도한 돌봄의 대상이 되는 동물도 있지만 한쪽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무차별적인 죽임을 당하는 동물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여름이면 대규모로 출몰하는 ‘러브 버그’라는 별칭의 ‘붉은등우단털파리’는 사실 죽은 식물을 먹어서 소화하고 분해하는 역할을 하는 익충(益蟲)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작 일주일 정도만 참으면 사라질 불쾌한 동물이 싫었고,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게 해 달라는 민원을 줄기차게 제기했다. 해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대규모 살충제를 뿌려가며 민원을 받들고 있다. 한때는 길조였다가 유해 야생동물로 전락한 까치, 먹이를 찾으러 왔다가 번쩍이는 도심 네온사인에 길을 잃어 난동을 부리게 된 멧돼지 등도 ‘너무 많다’는 이유로 제거의 대상이 된 동물들이다. 길고양이의 안락사는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야생동물은 대량으로 죽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인간의 행위가 동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야생동물이 너무 많다는 판단도 조금은 더 조심스럽게, 덜 폭력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책에는 시대에 따라 부침을 겪는 다양한 동물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1970년대 정부는 ‘전국 쥐잡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무분별한 쥐약 사용으로 인해 여우를 비롯한 포식 동물이 사실상 절멸하고 말았다. 80~90년대 정력에 좋다면 무엇이든 잡아먹는 ‘보신 열풍’이 불면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거나 개체 수가 크게 줄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고라니는 살아남았다. 약재로 쓸 뿔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며 한때 마을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했던 백로는 깃털이 날리고 냄새난다는 이유로 서식지에서 쫓겨나고 있다. 부동산이 가장 중요한 나라에서 백로 서식지로 인해 집값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반영된 결과였다.

저자는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다양한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만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동물의 관점에서 동물을 주어로 삼아 동물의 문제를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모두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 세·줄·평★ ★ ★
·개와 고양이를 바라보는 눈으로 왜 넙치와 우럭을 바라보지 못할까
·집에서 돌보는 것은 사랑이고, 팔기 위해 돌보는 것은 학대일까
·동물들은 그냥 있는 그대로 놔두라고 한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