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아론이 아니라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입력 2025-04-17 03:09

매년 4월 20일은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장애인의 날’입니다. 이날을 중심으로 한국교회는 ‘장애인 주일’을 지키기로 한 지 45년이 됐습니다. 한 가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삼상 16:7)을 믿습니까.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시각을 교회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습니까. ‘성경은 성경이고 현실은 현실’이라는 가치관에 의해 교회가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지요.

430년간 이집트에서 신음하며 살아가던 히브리 족속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언어장애인’ 모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하니 적합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장애를 겪는 당사자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는 겸손이 아니라 사실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누가 언어장애인을 만들었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하나님은 “네가 부적합한 이유가 내 탓이냐”라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네 곁에는 말 잘하는 아론이 있다. 말하는 일은 아론이 대신하면 된다. 너는 아론에게 하나님같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매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요점은 이것입니다. 이집트에서 히브리 백성을 이끌어내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순종하며 감당하는 사명은 모세가 감당합니다. 그리고 비장애인 아론은 모세의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협력(Cooperation) 모델이요 통합(Inclusion) 사역입니다.

목회의 주역은 하나님이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그 사역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자가 감당해야 하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동역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와 교단 총회를 봅시다. 교회 안에서 장애인 리더를 세우고 있습니까.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롬 3:22, 10:12)께서 “차별하지 말라”(골 3:11, 약 2:1)고 강하게 명령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론이 아니라 모세를 부르신 것은 ‘차별이 아니라 공평한 것(Not unfair, but fair)’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지체 장애를 겪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자신의 식탁에 초청합니다. 그것도 일시적 초청이 아니라 상시 초청입니다. 사무엘하 9장 10절은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식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장애를 겪는 자, 연약한 자, 지극히 작은 자, 사회에서 주변인이거나 소외된 자가 ‘나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환대(hospitality)를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세상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것 이상으로 교회에서 똑같이 소외되고 차별받는다면 그곳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히브리 백성의 지도자로 언어 장애인 모세를 부르시고 말 잘하는 아론이 조력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교회가 추구해야 할 장애인 사역의 깨우침이 있습니다. 통합의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 통합교회(Inclusive church)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계윤 목사 (전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

◇이계윤 목사는 장애인 신학을 연구하고 교회와 사회의 장애인식 개선을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와 동빙고교회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