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이긴 하지만, 그래도 눈 치우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갈 거야.” 네가 제설작업 중에 허리를 다쳐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아빠가 입대 전 영혼 없이 네게 했던 말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또 아빠가 혹한기 훈련은 꼭 열외 받으라고 했더니 전방에는 허리 안 다친 장병이 거의 없다는 네 답변에 아빠는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네가 태어나기 1년 전인 2001년에 군 가산점 제도가 폐지됐단다. 군 가산점 제도란 9급이나 7급 공무원 응시자와 공기업 취업에 응시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취업 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였지. 당시 여성단체나 장애인단체 등이 위헌심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폐지됐단다. 그런데 폐지를 요구한 단체에서도 그냥 폐지만 요구한 건 아니었다. 군 복무를 마친 청년들에게 다른 형태의 보상 제도가 만들어져야 된다고 주장했던 거지.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합당한 보상의 일환으로 20여년 만에 병사 봉급 인상 계획이 추진되고 실행된 일이야.
네가 1월에 병장 진급을 했을 때 아빠는 병장 월급 150만원 시대의 첫 수혜자라고 좋아했었지. 듣던 네 표정이 별로였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진짜 너희들이 원하는 건 월급이나 올려주는 것이 아니었다는 걸 말이야. 기성 세대가 2030 남성의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너희들의 억울하고 불안한 속마음을 제대로 공감하지 못했더구나. 명색이 상담학자인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아빠는 사회에 진출하면 남성들이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월급을 받던 시대를 살아 왔어. 지금은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어지는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고민에 시달리고, 결국 유리천장의 현실은 아빠 세대와 별다른 진전이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인지 현재 2030 남성들이 ‘공정’이라는 미명하에 불리한 처우를 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단다. 예컨대 경찰이나 소방공무원들의 경우 위험한 현장근무는 늘 남성들 몫이고,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성 동료들은 비슷한 월급에 더 많은 승진 기회를 얻는다고 인식할 수 있다는 걸 최근에 들었다. 물론 여성들 또한 현장 투입을 원하더라도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현장근무에서 배제되는 소외감도 있겠지만 말이야.
정작 너희들을 좌절시킨 건 기성세대와 미디어의 프레임일 것이라고 느꼈어. 최근 아빠가 참석한 토론회에서 들은 이야기 중 국가기관인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2020년 제작한 성인지 교육 영상에 ‘남성은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이므로 이를 남성이 해명하는 것이 시민적 의무’라는 내용이 담겼다고 하더구나. 이런 낙인 프레임이 얼마나 너희를 화나게 했을까 처음 느끼게 됐다. 데이터를 보면 탄핵에 찬성한 2030 남성과 여성 비율이 비슷했음에도 언론은 유독 남성들에게만 ‘극우’ 딱지를 붙였지. 헌법재판소의 판단처럼 비상계엄을 막은 주역이 바로 소극적으로 대처한 2030 군인들이었는데. 응원봉을 든 2030 여성들과 비교하며 너희들을 죄다 ‘2찍’(보수 지지자)으로 몰아갈 때 얼마나 참담했을까.
특히 다가오는 대선에는 표에만 눈이 어두운 정당과 정치인들이 2030세대를 남녀로 갈라치기하는 정신 나간 짓을 더 이상 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희 세대 남녀 모두는 국가를 버티는 허리다. 국가 시스템은 유기체와 같아 허리가 무너지면 몸 전체를 제대로 세울 수 없는 법이지. 그래서 너희는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지금 현재야. 너희가 지치고 포기하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너희들의 아픔과 부담을 진심으로 공감하는 어른들이 점점 많아지길 기대하면서 아빠가 부족하나마 네겐 그런 역할을 하도록 노력할게.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