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두 나라 평행이론

입력 2025-04-17 00:36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 첫 당선 시기가 2016년으로 같고, EU 탈퇴 진영과 트럼프 측의 선거 캠페인이 상당히 비슷했다. 무엇보다 트럼프 본인이 열렬한 브렉시트 지지자였다.

2019년 영국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은 EU 탈퇴 진영의 전략가 도미닉 커밍스가 어떻게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끌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커밍스는 사회 주류로부터 밀려난 계층과 정치 무관심층, 속으론 탈퇴를 바라면서도 변화가 두려운 사람들을 집중 공략했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구호는 ‘주도권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 위대했던 영국의 힘, 지금은 유럽에 빼앗긴 힘을 다시 가져오자는 의미다. 트럼프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과 유사하다.

커밍스는 또 영국이 EU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내고 있으며 튀르키예 이민자들이 곧 영국으로 몰려올 것이라는 팩트와 거리가 먼 주장을 반복함으로써 대중의 분노와 공포를 자극했다. 미국이 유럽에 오랫동안 돈을 뜯겼고, 미국에 온 불법 이민자들이 온갖 흉악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과 비슷한 맥락이다.

선동과 거짓 주장을 서슴지 않으면서 그동안 박탈감을 느껴온 유권자층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파고든 것이 커밍스와 트럼프의 공통된 성공 전략이었다.

9년이 지난 지금도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평행이론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브렉시트 결정과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모두 ‘경제적 고립주의 실험’이며 ‘놀라운 경제적 자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짚었다.

브렉시트는 당시 영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병통치약으로 선전됐지만 실제로는 경제적 후퇴만 가져왔다. 영국의 무역 규모와 민간 투자, 생산성은 모두 EU에 속해 있었을 때보다 감소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시장의 불확실성뿐 아니라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브렉시트가 불러온 2차적 영향 가운데 ‘리즈 트러스 순간’이 있다. 이것 역시 트럼프의 관세 정책과 놀랍도록 닮았다. 2022년 9월 영국 총리가 된 보수당의 리즈 트러스는 침체된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며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폈다. 하지만 역풍이 거세게 불자 즉각 정책을 철회하고 실각해 역대 최단명(50일) 총리로 기록됐다.

특히 트러스의 정책은 국채 투매를 촉발시켜 국가 신용위기를 초래했는데, 최근 트럼프가 상호관세 발효 후 13시간 만에 ‘90일 유예’로 후퇴한 직접적인 이유가 국채 투매 현상이었다는 점과 흡사하다. 물론 트럼프가 트러스처럼 빛의 속도로 백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트러스처럼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트러스의 감세 정책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더 낮다며 “트럼프의 유급 홍보담당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 그 정책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인들이 겪을 단기적 고통은 확실하지만 장기적 이익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계속 가면 “미국은 더 허름한 도로, 오래된 공항, 낡은 공장을 가진 나라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역사적으로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으면 그걸 거울삼아 경계해야 마땅할 텐데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꾸 실수를 반복한다.

천지우 국제부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