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는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천명한 국립예술단체 지역 이전 문제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문체부는 내년 상반기 서울예술단의 광주 이전을 시작으로 다른 단체들도 단계적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 밀고 나가겠다는 것이 문체부의 입장이다.
그런데 문체부는 공연계에 미칠 엄청난 영향에도 불구하고 관련 조사나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았다.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해외에서 국립예술단체 이전의 성공 사례로 든 것이 대표적이다. BBC 필하모닉이 1990년대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이전한 덕분에 맨체스터가 클래식 중심지가 됐다는 발표는 잘못된 정보인 것이 드러나 빈축을 샀다.
사실 영국에는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과 관련해 문체부가 참고할 사례들이 있다. 런던에 있는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잉글리시내셔널 오페라(ENO)다. 영국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2019년부터 ‘레벨링 업(Leveling Up)’ 정책을 추진 중인데, 공연계에서 두 단체가 먼저 대상이 됐다. 아무래도 런던에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로열 오페라단이라는 간판 단체를 옮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전역에서 5개 악단을 운영하는 BBC는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를 런던 밖으로 옮기는 계획을 2021년 발표하고, 이듬해 노팅엄을 낙점했다.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는 2023년부터 지금까지 노팅엄에서 꾸준히 콘서트를 열고 지역단체와 협업하고 있다. 특히 노팅엄대학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학생들의 교육 및 실습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다만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는 2024년 런던의 스튜디오를 비롯해 어려운 재정 문제로 이전은 포기했다.
BBC가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웠던 것과 달리 ENO는 잉글랜드예술위원회(ACE)로부터 이전을 강요받았다. 2022년 ACE는 3년(2023~2026년) 단위로 예술단체 지원 규모를 결정하면서 ENO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 자금’ 지원을 발표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이란 맨체스터로 2026년까지 이전하라는 것이었다.
ENO는 런던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연장인 콜리세움 극장 소유주여서 기획 공연을 뺀 나머지 기간은 대관으로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장르 특성상 상업성이 높지 않은 데다 전속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까지 있어 공적 지원금이 단체 운영에서 매우 중요하다. 당장 ACE 지원이 줄자 ENO 경영진은 단원 해고와 계약직 전환, 급여 삭감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 ENO 단원들이 영국 공연예술노조와 항의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오페라계가 비판 목소리를 내자 ACE는 추가 지원과 함께 이전 기간을 2029년까지 연장했다.
결국 이전에 동의한 ENO는 맨체스터 측과 새로운 파트너십 마련에 나섰다. 그리고 2025년부터 맨체스터 전역의 공연장 및 예술단체와 연계해 꾸준히 공연을 선보이는 동시에 청소년 오페라단 신설, 지역 학교와의 협업 등을 진행하며 2029년까지 유연하게 정착하겠다는 계획을 2024년 11월 발표했다. 맨체스터 내 주공연장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가운데 ENO는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도 계속 공연을 올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ENO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국립예술단체의 지역 이전은 갈등과 진통이 따르기 때문에 연착륙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가지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단체의 이전은 결국 사람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1~2년 가서 고생하면 된다”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의 발언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