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어느 교회 목사님이 언급했을까.’ 기독 서적 중 이례적인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나타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신간 아닌 구간이 빠르게 주요 온라인 서점 종교 부문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석권했다면 십중팔구는 대형교회 목회자 설교에 언급됐을 가능성이 크다.
설교를 듣는 이들의 수가 많을수록 해당 서적의 역주행 속도도 빠른 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출석교회뿐 아니라 타 교회의 온라인 예배 영상도 찾아보는 이들이 늘면서 이런 양상은 더 공고해졌다. 몇몇 출판사는 아예 유명 목회자의 교회로 매번 신간을 보낸다. 그만큼 이들 목회자 설교의 파급력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는 설교를 주의 깊게 듣는 성도가 한국교회에 적잖다는 이야기도 된다. 기독교 비영리 연구기관 목회데이터연구소(목데연)가 성도와 목회자 1만230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그 분석을 담은 신간 ‘한국 교회 진단 리포트’(두란노)에 이를 뒷받침할 내용이 나온다. 책에 따르면 성도 1000명 중 ‘예배·설교로 변화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는 88.8%였다.
‘예배에서 깨달은 내용을 주중에 기억하며 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한다’고 답한 이도 84.3%에 달한다. 목데연은 “한국교회 성도는 예배와 설교를 통해 변화된 삶을 추구하려는 의향이 상당하다”며 “이들은 예배에 진지하게 임할 뿐 아니라 설교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지녔다”고 분석한다.
한편 목데연은 목회자가 설교할 때 복음의 공공성에 대해 강조할 것도 권한다. 성도의 절반 이상이 설교로 ‘성경과 교리를 더 잘 알게 됐다’(68.6%)거나 ‘삶의 지침을 얻었다’(67.5%)고 답한 데 비해 ‘사회 정의에 관한 관심’(43.0%)이나 ‘환경 문제에 관한 관심’(35.5%)이 생겼다고 답한 비율은 비교적 낮아서다. 한국교회 성도의 ‘설교 수용성’이 높은 만큼 신앙이 사회적·공적 영역에서도 실천돼야 함을 이들에게 알리는 게 목회자의 할 일이란 게 목데연의 제언이다.
그간 사회적·공적 영역에서 목소리를 낸 목회자가 전혀 없던 건 아니다. 복음에 근거하기보단 어느 한 편을 대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낸 이들이 대다수였을 뿐이다. 좌든 우든 한편만 바라보는 목회자의 말엔 분노와 혐오, 분열의 언어가 가득했다. 이렇게 되면 예수가 공생애 기간 수없이 강조했던 사랑과 평화, 화합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마 5:9)이라거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마 5:44)는 예수의 가르침은 이들에게 빛바랜 교훈일 뿐이다.
‘탄핵의 강’을 건너고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양 갈래로 찢긴 국민의 마음을 치료할 화합의 언어가 절실하다. 생각이 다른 상대와 나를 묶는 설교, 사랑으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는 설교가 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에 선포될 때 성도들은 ‘복음의 힘’을 다시금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이 화합의 언어를 전하는 전령이 돼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는 데 앞장설 것이다.
너무 꿈 같은 소리로 들리는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화합의 언어로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목회자의 연설이 실제로 있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다.
킹 목사는 구약성경 이사야서와 아모스서를 인용하며 증오 대신 사랑과 화해, 용서로 새 시대를 열 것을 주문했다. 이 연설 중 일부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으로) 이 나라의 시끄러운 불협화를 아름다운 형제애로 짜인 교향곡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설교이자 기도 아닐까.
양민경 미션탐사부 차장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