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무역 전쟁’이 기세를 더하면서 원유·가스 등 1차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유국의 원유를 비축했다가 유사 시 우선구매권을 확보하는 국제공동비축 사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석유공사는 올해 쿠웨이트석유공사(KPC)와의 국제공동비축 계약을 통해 원유 400만 배럴을 석유공사 울산 비축기지에 유치했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KPC와 체결한 계약 물량을 올해 실제로 도입했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공사에서 확보한 원유 공동비축 물량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530만 배럴), 아랍에미리트(UAE) 애드녹(400만 배럴)을 포함해 총 1330만 배럴까지 늘었다.
국제공동비축이란 석유공사가 지닌 비축시설을 산유국에 빌려줘 원유·석유제품을 저장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사 입장에서는 에너지 안보를 제고하는 동시에 경제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는 ‘일거양득’의 사업이다. 비축한 물량을 유사 시 가장 먼저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우선구매권을 확보하는 데다, 상대 산유국으로부터 임대료를 받아 원유 구입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본다.
공동비축은 상대 산유국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특히 한국과의 공동비축은 동아시아 지역에 자국에서 수출하는 원유의 중간 공급 거점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국 등 인접 국가의 정유사에 원활하게 원유를 공급하는 동시에 장거리 이송 시의 물류비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공동비축을 통해 석유공사가 유치한 원유 1330만 배럴은 국내 전략비축유의 약 13%에 해당한다. 에너지 수입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유사 시 요긴하게 활용하기 충분한 양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연간 원유 수입량은 10억 배럴이었다.
공동비축의 에너지 안보 제고 기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서 한층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제 통상 환경은 미·중 관세 전쟁과 부활하는 보호무역주의로 급격히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증산 요구와 중동의 지정학적 위기가 어우러지면서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제공동비축은 단순한 간접비축 전략이 아닌 한국의 에너지 생존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면서 “주요 산유국과의 국제공동비축 협력을 더욱 돈독히 하며 비축자산 활용을 최적화하고, 시장 불확실성에 대비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하겠다”라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