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케이블 시공 32년 외길… “연평균 35% 성장 목표”

입력 2025-04-16 23:08
게티이미지뱅크

“32년 전 바다를 사랑하는 기술자들이 모여 한국해양기술을 설립했습니다. 바다에 미친 사람이 와도 힘들어서 떠날 판이기 때문에 육지에서 금광 캐듯 돈 벌러 바다로 와선 될 일이 아닙니다.”

지난 14일 수원 해양빌딩에 있는 한국해양기술 본사에서 ‘바다 사나이’ 안승환 회장을 만났다. 그는 바다가 3면을 둘러싸고 있는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해양에 있다고 믿는다. 바다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육지엔 땅 한 평 갖고 있지 않다는 그는 중학생 시절엔 꿈 그리기 시간에 큰 배를 그렸다. 이후 해양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해양기술을 창업해 해저케이블 시공 외길을 걷고 있다. 안 회장은 “작은 회사 규모에도 불구하고 한국해양기술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바다 하나만 파기 때문”이라며 “다른 회사는 아파트도 짓고, 도로도 놓는 와중에 포트폴리오 일부로 해저케이블 사업을 하지만 우리는 한 우물만 판다는 점을 베네수엘라 발주처에서 높게 평가해 수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안승환 한국해양기술 회장

한국해양기술은 해양 전문가·기술자들이 모여 지난 1993년 설립한 회사다. 해저케이블 관련 해양 조사·설계·시공에 강점이 있다. 그 외에도 해양 정화 사업, 항만 및 연안 토목공사, 해양 구조물 진단, 해저케이블 보호 공사와 유지·보수 등 다양한 바다 사업을 한다. 회사는 해양·해저 시공 32년 경력을 바탕으로 축적한 유·무형의 자산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국내에 있는 총 3대의 해저케이블 전용 포설선 가운데 1대 등 자체 개발한 다량의 해양·해저 수행 장비를 보유 중이다. 평균 경력 20년 이상의 탐사 전문 인력을 보유 중이며, 베네수엘라 해저케이블 감리 사업 등 해외 수주 경험도 있다.

한국해양기술이 자체 개발한 해저케이블 포설선 ‘코세코-9001’호가 시공을 위해 해상풍력단지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해양기술 제공

안 회장은 국내에서 운용되고 있는 세 개의 포설선 가운데 한국 기술로 자체 설계해 건조한 배는 한국해양기술의 ‘코세코-9001’호뿐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수입한 타사 배와 달리 코세코-9001호는 한국해양기술이 직접 한국 바다에 최적화해 만들었다. 특히 바람의 질이 좋아 해상풍력 발전을 하기 좋은 서해안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반영했다. 안 회장은 “한국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돌풍처럼 배를 툭툭 치는 조류가 많다”며 “이에 맞춰 배의 크기를 해외보다 작게 하고, 배를 단단히 고정할 수 있는 6개의 닻을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해저케이블 제조사인 LS전선과 대한전선도 해저케이블 시공 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집행하며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 회장은 “제조사들은 자신들의 케이블만 깔 수 있지만, 유럽 일본의 전선 메이저나 중국 해저케이블 제품을 시공하는 사업을 이들이 수주하는 건 미래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며 “반면 한국해양기술은 LS전선, 대한전선, 중국 ZTT 등 다양한 케이블을 깔아봤고, 시공에 특화한 회사기 때문에 고객 확장성이 더 좋다”고 말했다.


한국해양기술의 미래는 해상풍력 시장의 성장과 직결한다. 해저케이블의 주된 용도가 해상풍력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육지로 끌고 오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해상풍력 프로젝트 건설 비용에서 해저케이블 시공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8%다. 올해 2월 기준 전기위원회가 허가한 해상풍력 발전사업 총사업비가 약 188조원인데 이 가운데 약 15조원을 한국해양기술 같은 해저케이블 시공 사업자가 가져가는 셈이다. 안 회장은 “한국처럼 작은 땅덩어리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나라에서는 해상풍력 발전이 꼭 필요해 관련 시장이 성장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우리가 참여했던 해상풍력 단지 규모가 보통 100㎿였는데 앞으로는 500㎿, 1GW 프로젝트가 주류가 될 것”이라며 “총공사비 1조원짜리 사업만 수주해도 한국해양기술에 700억~800억원이 떨어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해양기술의 지난해 매출(28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실제로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원 가운데 해상풍력이 차지하는 비중 목표를 지난 2022년 약 3%에서 2030년 23.8%, 2034년 27.5%로 대폭 상향했다. 각국의 이산화탄소 감축 노력이 활발히 진행 중이고, 기술 발전으로 풍력발전 원가도 떨어지고 있다는 점도 한국해양기술엔 호재다.

한국해양기술은 올해를 해상풍력 원년으로 보고 순풍에 올라타기 위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우선 해저케이블 포설선 및 운송선을 추가 확보할 예정이다. 한국해양기술은 지난해 285억원이었던 매출이 매년 34.5% 성장해 2027년 687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미래 먹거리 확보에 관한 구상도 있다. 안 회장은 “해저케이블뿐 아니라 풍력 발전기 기자재 관련 유지·보수 사업(O&M)에 진출하기 위해 오는 6월 관련 업체와 합병을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또 물류 기업 대우로지스틱스와 함께 해저케이블 유통 시장에 공동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안 회장은 업계 전반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해저케이블 포설선 및 운송선, O&M 전용 선박(CTV), 해상풍력설치선(WTIV), 선원 운송선 등 다양한 선박의 양이 정부에서 공언한 해상풍력 규모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약 20~30%에 불과하고 이런 장비들을 갖다 놓을 야드(배후 단지)도 필요한 수준의 10%에 불과하다”며 “누군가가 큰 그림을 보며 향후 필요한 전체 인프라에서 현재 부족한 부문을 찾아 보완해야 하는데 그런 계산을 하는 주체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후배들이 한국해양기술을 잘 이어받도록 가교 구실을 한 이후에는 정책 쪽으로 빠져서 직접 큰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며 “바다를 아는 사람은 바다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다”고 밝혔다.

수원=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