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미국에서 4년간 최대 5000억 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반도체와 슈퍼컴퓨터 등 인공지능(AI) 인프라를 생산하겠다고 14일(현지시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거대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미국 투자 계획을 강조하고 나서는 모습이다.
엔비디아는 이날 공식 블로그에 “처음으로 AI 슈퍼컴퓨터 전체를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공장을 짓기 위해 제조 파트너사들과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기업 대만 TSMC는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엔비디아가 설계한 최신 AI 칩 ‘블랙웰’을 생산 중이다. 슈퍼컴퓨터는 대만 전자 제조업체 폭스콘과 위스트론이 텍사스주에 엔비디아와 함께 건설하는 제조 공장에서 생산될 예정이다. 엔비디아는 “향후 12~15개월 내에 대량 생산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반도체 패키징 업체인 미국 앰코테크놀로지, 대만 SPIL(실리콘웨어정밀산업) 등과도 협력해 미국에서 AI 반도체 등 인프라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미국 내 AI 칩과 슈퍼컴퓨터 제조로 향후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5000억 달러라는 수치는 엔비디아가 미국 내 AI 공급망을 통해 판매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제품의 가치를 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엔비디아의 미국 투자 계획은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 대해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엔비디아 발표에 대해 “관세 덕분”이라고 자찬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 만찬에 참석해 대규모 미국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엔비디아의 AI 칩 H20에 대한 중국 수출 제한 계획을 철회했다고 NPR은 보도했다.
애플도 지난 2월 미국 내 연구개발(R&D), AI 분야에 4년간 5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을 상호 관세에서 제외했다. 그는 품목 관세도 일부 제품에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애플을 관세에서 면제시키는 게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따른 빅테크들의 미국 투자 계획은 국내 기업에도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업계는 일단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관세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생산 기지를 새로 조성하는 건 여러 요소를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