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강영애 (12) 동굴 생활 마치게 하시고 여종의 삶 예비하신 하나님

입력 2025-04-17 03:07
강영애 목사가 지금까지 사용하는 1956년 판 성경책. 강 목사 제공

삼각산에서 두 번째 겨울이 끝나갈 무렵 하나님께서 내게 “금식하라”는 마음을 주셨다. 산속에서 먹을 게 마땅치 않았기에 금식이 두렵진 않았다. 그렇게 40일 금식을 했다.

하나님은 나를 산에서 내려갈 준비를 시키고 계셨다. 마침 독립문 인근에서 함께 예배드리던 교회 공동체 교인 몇몇이 내가 삼각산에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됐다.

그 교회에 출석하던 시절 결혼 3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던 한 새댁이 있었다. 내가 그의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한 지 3개월쯤 지나 임신 소식이 전해졌다.

건강 문제로 고통받던 젊은 남성 교인을 위해 내가 기도하는 중 배 안에 붉은 유리 물 같은 것이 가득 찬 모습을 본 적도 있다. 기도 후 그는 회복됐다. 이런 일을 몇 차례 본 교인들은 내게 신유의 은사가 있다며 아플 때마다 기도를 부탁하곤 했다.

그런 내가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 사람들의 궁금증도 컸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남선교회장 부부가 삼각산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나를 찾아와 아픈 성도가 있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요청을 받은 나는 산에서 내려와 적십자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오랜만에 만난 성도들은 “집사님 오셨느냐”며 반갑게 맞아줬다. 병원이 아이들 학교와 가까워 따뜻한 물로 아이들을 씻길 수 있어 좋았다. 교인들은 나와 아이들의 옷도 마련해줬다. 아픈 성도를 위한 기도는 응답받으며 여지없이 효과를 발휘했다. 교인은 병세가 호전돼 퇴원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삼각산 생활을 마무리하고 여종의 삶을 준비하게 하셨다. 교인들은 우리가 다시 산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창고를 개조해 거처를 마련해 줬다.

창고 생활은 삼각산보다 나았지만 네 식구가 지내기엔 좁았다. 이후 서대문구 충현동을 지나던 중 큰 기와집 옆에 있는 작은 방을 보고 그곳으로 이사했다. 이곳도 네 식구가 겨우 누울 만한 공간이었지만, 교인들이 가재도구를 챙겨주고 손봐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됐다.

“교회 집사님이세요?” 며칠 뒤 기와집 안주인이 “담 너머로 찬송 소리를 들었다”며 말을 걸어왔다. 자신도 교인이라며 저녁에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건넨 옷 꾸러미엔 실크 한복이 일곱 벌 들어 있었다. 아이들 옷도 해진 데 없이 깨끗했다.

안주인은 국회의원 아내였는데 선거철이라 예배를 부탁한 것 같았다. 뜻밖의 선물에 감사해 기도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저녁에 예배를 마친 뒤 그 집을 나서면서 나도 모르게 안주인에게 “오늘 저녁 불조심하세요”라는 말을 툭 건넸다.

다음 날 새벽 기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방차가 보였다. 기와집의 일꾼들이 지내는 사랑채 툇마루에서 불이 났다고 했다. 안주인은 “집사님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집이 다 탈 뻔했다. 은사가 많은 분”이라며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면서 자신의 여동생이 대학 총장의 며느리인데 그곳에서도 예배를 드려달라고 했다. 나는 대학 관사로 찾아가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땐 몰랐다. 하나님께서 국회의원과 총장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단련하고 계셨다는 것을 말이다.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