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가 약 90억 달러(12조850 0억원) 규모의 정부 보조금 중단 압박에도 다양성 정책 폐지를 비롯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주요 사립대에 정부 보조금 중단을 압박하며 ‘문화 전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이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대학은 하버드대가 처음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22억 달러(3조1400억원) 상당의 보조금 지원을 동결했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현지시간) 교내 커뮤니티에 보내는 글에서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어떤 정부도 사립대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연구와 탐구 분야를 추구할 수 있는지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버드대는 독립성을 포기하거나 헌법상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버드대나 다른 어떤 사립대도 연방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하버드대에 모든 현직 교수 관련 채용 데이터와 합격자·불합격자 정보를 제공할 것을 요구했다. 또 ‘지속적인 재정 관계를 위해 필요한 9가지 조치’ 실행을 요구했는데,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 즉각 폐지와 입학 규정 변경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하버드대는 앞서 반유대주의를 막기 위해 시위 주도 학생 징계와 일부 교수 해임 등의 조치를 실행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새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버드대 교수 800여명도 반대 성명에 동참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대학들의 DEI 제도와 교내 반유대주의 등을 이유로 아이비리그 대학 등 주요 대학 60곳을 조사하며 연방 연구비 지원을 중단했다. 하버드대에 대해선 약 2억5600 만 달러의 연방 계약과 87억 달러의 보조금 지급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린다 맥마흔 교육장관은 앞서 “반유대 차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지 못해 하버드대의 평판이 심각한 위협에 처했다”고 주장했지만, 하버드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위반했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하버드대의 입장이 발표된 직후 트럼프 행정부는 즉각 하버드대에 대한 지원 중 6000만 달러의 계약과 함께 보조금 22억 달러를 동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