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빅 텐트

입력 2025-04-16 00:40

지금은 그 색채가 옅어졌지만, 미국 민주당은 대표적인 빅 텐트 정당이었다. 노동자·농민·서민을 기반으로 창당했는데, 1930년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력을 얻으려 도시 중산층, 흑인, 진보 지식인, 가톨릭, 남부 보수주의자 등 때로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여러 집단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이때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정치 세력이 한 지붕 아래 뭉친다는 용어 ‘빅 텐트’가 나오기 전이었다. 정치학자 오토 키르히하이머가 제시한 ‘캐치올(catch-all) 정당’이 이런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이다가, 1975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이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 우파, 자유지상주의자, 록펠러 공화주의자 등 여러 보수 계파를 아우르면서 빅 텐트란 표현이 등장했다.

미국 양당 정치에서 선거는 어느 쪽 텐트가 더 크냐의 싸움이곤 했다. 지난 대선도 공화당 밴스 부통령 후보가 “우리 당엔 빅 텐트가 있다”며 결집을 촉구했고, 민주당이 해리스 중심으로 뭉치자 “빅 텐트를 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화당 텐트는 차라리 ‘트럼프 텐트’로 불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당내 반대파가 소멸한 일극체제여서 빅 텐트의 전제인 이질적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도 빅 텐트 전략은 그 용어보다 먼저 등장했다. 1990년 ‘3당 합당’(노태우·김영삼·김종필)과 1997년 ‘DJP 연합’(김대중·김종필)은 이념을 넘어선 세력 확장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이런 시도를 빅 텐트라 부른 건 좌우 진영 정치가 고착된 2000년대 이후인데, 주로 약세 진영의 선거 전략, 진영 이탈 세력의 제3지대 구축 전략으로 거론됐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 맞선 문재인 안철수 후보 단일화처럼, 2013년 국민의당(안철수)과 바른정당(유승민)의 합당처럼.

지난 20년간 빅 텐트 얘기는 선거마다 있었지만, 성공 사례는 드물었다. 텐트보다 진영의 벽이 훨씬 견고해서일 테다. 국민의힘에서 다시 빅 텐트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진영을 넘어설 비전을 갖추는 일이 텐트 치는 것보다 우선돼야 할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