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맞닿은 바위산·소나무, 겸재 예술이 꿈틀거린다

입력 2025-04-15 23:20
삼성가가 ‘이건희 컬렉션’ 국가 기증 때도 내놓지 않은 국보 ‘금강전도’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겸재 정선’전에 얼굴을 내밀었다. 대중에 공개된 것은 15년 만이다. 해방 전후를 각기 대표하는 수집가 간송 전형필의 간송미술관과 호암 이병철의 호암미술관이 합심해서 만든 이번 전시에는 겸재 정선의 대표작이 총출동했다. ‘금강전도’(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130.8×94.5㎝). 리움 제공

“옹은 천하에 무궁한 명성을 차지하고, 겸해서 팔십의 장수를 누렸으니 하늘이 옹에게 주는 것이 너무 풍부하지 않은가.”

84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조선의 한 문인이 이렇게 헌사를 바친 화가가 있었다. 그림 재주로 영조의 사랑을 받았고 화명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인복과 관운이 따랐다. 조선시대에 드물게 장수했다. 몰락한 양반가에 태어났지만 이처럼 최고의 인생을 살았던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 그를 조명하는 역대급 전시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초반인데도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리움미술관 홍보실 박민선 수석은 “역대 최다 관람객을 동원한 ‘김환기’전(총 15만명)보다 첫 주 관람객 수준으로는 더 많다”며 기록 경신을 예상했다.

다시 보기 힘든 역대급 전시

18개 기관 및 개인 소장품 총 165점이 나왔다.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인 삼성 리움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의 양대 컬렉터 파워가 작동한 덕분이다. 리움 소장품은 15점이지만, 간송미술관에서 무려 79점을 보탰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도 33점이 출동했다. 국보가 2점, 보물이 57점이다. 국보는 국가에 기증된 ‘인왕제색도’(이건희 컬렉션)와 삼성가 소장인 ‘금강전도’이다. 모두 볼 수 있다. 다만 인왕제색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 일정으로 내달 6일까지만 전시된다. 전시를 기획한 조지윤 소장품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리움에 이어 내년 하반기에 대구 간송미술관에서 다시 선보인다”고 했다.

인복과 관운 넘치는 인생

정선은 숙종 말년에 한양의 백악산 서쪽, 지금의 청운중학교가 자리한 청운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증조부까지 벼슬을 내지 못한 몰락한 양반 가문이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서 대대로 살았던 ‘조선의 메디치가’ 안동 김씨 집안의 후원 덕분에 중년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41세에 관상감의 천문학겸교수로 관직에 나갈 수 있었다. 미관말직의 잡직이었지만 이게 발판이 돼 이후 하양(경북 경산), 청하(경북 포항) 현감 등 고을 원님만 수차례 하고 의금부 도사도 지냈다. 탁월한 그림 재주로 영조의 총애를 받으며 죽기 몇 년 전인 80세에는 재상의 반열인 종2품 동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실경산수화 넘어 진경산수화
‘망양정’(관동명승첩, 738, 종이에 수묵담채, 32.3×57.8㎝, 간송미술문화재단). 리움 제공

정선이 살았던 17∼18세기에는 지식인층 사이에서 국토 여행 바람이 거세게 일어났다. 금강산, 단양팔경, 박연폭포(개성), 태종대(부산)…. 선비들은 경치 좋기로 소문난 명승지는 다 찾아다니며 여행을 했다. 최고 인기는 금강산이었다. 안동 김씨 집안의 대학자로 정선의 후원자이자 스승인 김창흡은 열세 번이나 금강산을 다녀왔다. 김창흡은 우리 산천을 직접 여행하면서 본 경치와 풍물, 풍속을 노래하는 진경시(詩) 운동을 이끌었다. 회화에서 이를 실천한 제자가 화가 겸재 정선, 시인 사천 이병연이었다.

그런데 정선의 산수화는 직접 본 경치를 닮게 그린 실경산수화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붓 가는 대로 내면을 표출하는 문인화 정신을 가진 그는 산수 풍경에 내면의 정서까지 담았다. 인체를 연상시키는 바위, 과장된 파도의 표현, 실제보다 긴 절벽 등을 보면 진경의 의미를 알 수 있다.

10년 만의 나들이 ‘금강전도’

금강산을 여러 차례 다녀온 정선은 금강산 그림을 유독 많이 그렸다. 1711년(36세)에 처음 다녀온 이후 ‘신묘년풍악도첩’을 제작했다. 이듬해인 1712년(37세)에는 스승 김창흡이 묵객들과 함께 금강산을 여행갈 때 다시 동행했다. 겸재의 친구인 이병연이 금강산 초입의 금화 현감으로 재직 중이라 이들을 초청해 함께 여행간 것이다. 이병연은 이때 그린 겸재의 금강산 그림을 모아 ‘해악전신첩’을 만들고 폭마다 자신의 시를 곁들였다. 진경 시와 진경 그림이 합쳐진 이 화첩으로 겸재는 일약 명성을 얻게 된다. 해악전신첩은 김창흡의 형 김창업이 중국에 사신으로 갈때 가져가 소개하면서 겸재가 국제적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됐다. 진경산수의 결정판인 국보 ‘금강전도’는 과거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훗날 당시의 감각과 기억을 살려 그린 것이다. 70세에 은퇴해 그렸다는 설, 58세에 청하 현감 재직시절에 그렸다는 설 등이 있다. 겨울 금강산의 수많은 봉오리가 한눈에 들어오게끔 전도 형식으로 제작한 게 특징이다. 삐죽삐죽 화강암 바위산은 북북 내리 긋는 수직준법을 썼고, 소나무 우거진 흙산의 경우는 쌀알 같은 점을 뚝뚝 찍어 표현했다. 겸재 정선 전문가 최완수씨는 “진경산수화는 겸재가 골산을 양으로, 토산을 음으로 삼아 주역의 음양 원리를 화면에 맞춘 구성”이라고 해석했다. 금강전도는 리움 ‘세밀가귀’전 이후 15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벼슬할 때 마다 명작 화첩을 남겨

성격이 살가와 관운이 따랐던 정선은 ‘양천현아도’ ‘의금부도’ 등 근무지를 그림으로 남겨 긍지를 드러냈다. 자신이 살았던 한양 뿐 아니라 벼슬을 하던 시기를 잘 활용해 전국 명승을 그렸다. 1733년(58세) 청하 현감을 할 때는 울진의 망양정, 고성의 삼일포, 철원의 정자연 등 경상도와 강원도 여러 명승을 그린 ‘관동명승첩’을 남겼다. 1740년(65세)부터 5년간 양천 현령을 할 때는 한강을 따라 그린 ‘경교명승첩’, 경기도 연천 임진강변을 그린 ‘연강임술첩’을 남겼다. 망양정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정자가 사선 구도 속에 포치돼 역동감이 있다. 생경스러울 정도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주는 기세는 화원 출신 화가 김홍도의 그림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표현주의적 기운이 있다. 그림마다 함께 여행간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 그려져 있어 숨은그림찾기 하는 재미가 있다.

명작의 산실 ‘인곡유거’
자신의 집을 그린 ‘인곡유거’(경교명승첩, 1740∼41, 종이에 수묵담채, 27.4×27.4㎝, 보물, 간송미술문화재단). 리움 제공

겸재는 관상감을 얻기 전인 마흔까지는 끼니 걱정을 할 만큼 가난했다. 그랬던 그가 오십 중반이 넘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 1729년(54세)때 창의동으로 이사를 갔고 ‘인곡유거’를 남겼다. 이 그림 속에는 일자 기와집의 단출한 집이다. 하지만 이사 간지 15년 후 그린 ‘인곡정사'에서는 행랑채가 붙은 솟을 대문, ㄷ자 모양 안채가 있는 30~40칸 되어 보이는 기와집으로 집이 번듯해지고 규모가 커졌다. 자택 그림을 통해 자신의 성공을 증명한 것이다. 아쉽게도 ‘인곡정사’는 ‘퇴우이선생진적첩’ 속 ‘계상정거도’ 뒷면 작품이라 이번 전시에서는 실물을 볼 수 없고 디지털로만 볼 수 있다. 30여년을 산 이 집에서 진경산수의 명작들이 탄생했다.

해·무지개 그린 희귀 산수화까지

전시에 두루마리 그림으로는 유일하게 나온 ‘봉래전도’가 있다. 금강산을 뜻하는 그림 제목 ‘봉래선경(蓬萊仙境)’은 중국 근대 문인 장종상이 썼다. 이는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쳐 그의 그림이 팔렸음을 의미한다. 장종상의 지인이었던 곽소우는 이 그림을 항저우의 골동가게에서 샀다는 내용의 글을 곁들였다.

전시에서 조선시대 산수화에서는 보기 드문 해돋이, 무지개 풍경까지 볼 수 있다. 현장을 중시했던 겸재의 정신을 읽을 수 있다. 또 전형적인 문인화인 고사인물화, 화사한 화조영모화까지 나와 우리가 몰랐던 다채로운 겸재의 모습을 즐길 수 있다. 6월 2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