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좀 어려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우리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당시부터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론까지 넉 달 동안 엄청난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이 와중에 한국사회는 심각하게 분열과 반목을 경험했고, 한국교회의 일부 세력은 이 분열의 한복판에서 흐름을 주도해 갔다. 이를 놓고 어떤 사람은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교회가 본질을 망각하고 종교의 정치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하고, 또 어떤 이들은 교회가 마땅히 내어야 하는 목소리를 선지자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교회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은 좋았으나 불의한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결국 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를 상실하게 했다고 일갈했다.
하나의 현상을 두고 교회 밖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평가가 내려졌고 이 평가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문제를 신학적 문제라고 본다. 즉 “교회의 정치적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이며 만일 정치적 참여가 가능하다면 어떤 선에서 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돼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교회의 정치적 참여는 가능하되, 그 참여는 철저히 ‘하나님 나라’의 정치 참여이어야 한다. 첫째 교회는 절대 정치에 무심할 수 없다. 자신의 터전이요 성도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철저히 정치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회가 굶주린 자를 구제하는 것은 좋지만 이 굶주림을 가져오는 원인이 있다면 이것에 침묵하거나 외면할 수가 없다. 그것은 가난한 자의 신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의 정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정치적인 문제가 된다. 종교의 자유가 방해받는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이것은 교회의 선교 존폐와 관련돼 있기에 목소리를 내고 행동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면에서 종교의 자유를 거부하는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양립할 수 없다.
둘째 교회가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해서 곧 특정한 정치 정당과 노선을 같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는 교회가 보편성을 잃고 정치적 편당성을 갖게 된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분명히 정치적 함의를 가졌다. 그래서 이것이 결국 당시 지도층과 로마에 엄청난 두려움으로 다가오게 돼 예수님은 정치적 형벌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내용상으로는 영적이지만 표면상으로는 정치적 죽음이었다. 뭘 말할까. 예수님의 길은 당시 지배층에는 두려움을 가져올 만한 정치적 함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그분은 정치 운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복음주의 신학자 존 스토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정당을 형성하거나 정치 프로그램을 채택하거나 정치적 주장을 절대 내세우지 않았다. 가이사나 빌라도나 헤롯의 정책에 영향을 미칠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가르침과 사역은 정치적 의미가 있지만 특정 정치인이나 집단에 영향을 미칠 구체적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특성이 아닐까. 세계관, 즉 관점은 던져주되 구체적인 적용은 개인이 신앙 양심에 따라 하게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 일부 세력이 특정 정치집단의 주장과 동일한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셋째 예수님의 정치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였다. 그분은 세상의 모든 일을 철저히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하면 이 땅에 오게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통치가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이것을 놓고 모든 인간 삶을 해석하고 메시지를 던지셨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일에 치열하셨고, 항상 이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관점에서 모든 것을 해석하셨다. 소위 인위적이며 작위적이고, 세속적인 날 것으로 현상을 해석하신 적이 없다. 그분의 정치는 철저히 신학적이었다는 뜻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나라 사랑을 말하고 특정한 정치 이념을 말하면서 그 안에 전혀 신학적인 치열함이나 선교적인 고민이 들어가 있지 않은 흐름과 얼마나 다른가. 필자는 이런 흐름은 거짓 선지자 운동이요,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를 특정 이념에 팔아넘겨 교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것은 교회 안의 진보와 보수 양자에 해당한다. 말하자.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말하자. 그것이 예수의 정치이다.
(새문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