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입력 2025-04-17 03:08 수정 2025-04-17 09:33
세네갈 고레섬의 부두 전경. 황 회장 제공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 항구에서 대서양을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포르투갈 엔리코 왕자가 대항해시대의 꿈을 꾸었던 대서양과는 판이하다. 석 달 전 다녀온 세네갈의 고레섬(Island of Goree)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섬은 300년간 무려 2000만명의 아프리카인을 신대륙으로 보낸 노예무역의 중심이었다. 가족들이 뿔뿔이 나뉜 채 쇠고랑과 쇠사슬로 엮어져 끝없이 승선을 기다리다 영양실조와 설사로 죽어간 현장에는 한 시인이 풍자한 시구가 있다. ‘고레가 섬이라고 말한다면 그가 누구이든 거짓말이다. 고레섬은 하나의 섬이 아니다. 여기는 하나의 영적 대륙이다.’ 이 섬은 대륙만큼 수천만 영혼들의 고통과 상처와 분노를 품고 있기에 엄청나게 무게가 나가는 섬이라는 뜻이다.

노예들은 고레섬을 출발한 후에도 갖은 압박과 상실감으로 자살하거나 위생시설이 전무한 배에서 전염병으로 몰살당하기도 했다. 이른바 사탄의 왕국이었다. 이런 만행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아프리카 전역에서 자행됐다. 노예매매뿐만이 아니다. 독립 이후에도 전쟁과 기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모든 문제는 평화스러운 부족공동체를 무자비하게 해체하고 마음대로 국경을 정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 서구 열강의 몰이해와 탐욕에 있었다.

특히 앙골라 내전은 유명하다.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에도 30년간 지속된 내전은 민족 분쟁이 아니라 동서 냉전의 산물이며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이기도 했다. 석유와 다이아몬드 산지인 앙골라를 두고 이데올로기를 명분으로 쿠바-소련-동독-유고-북한-루마니아-콩고-브라질 등 앙골라공화국(MPLA) 12개국 연합과 미국-남아공-프랑스-이스라엘 등 앙골라민주공화국(UNITA) 8개국 연합이 대결했다고 하니 사실상 세계의 모든 대륙이 참여한 미친 전쟁이었다.

전쟁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특히 이데올로기 전쟁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끝없는 세력화를 통해 앞으로 돌진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트라우마와 허무, 좌절이다. 모든 것이 허상이고 자기기만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전으로 40여년간 수백만명이 죽고 모든 기간 시설은 초토화됐다.

결국 앙골라 국민들은 비참한 난민으로 전락해 초근목피로 생계를 유지했다. 전쟁에는 승자가 없는 법이다. 모두가 패자였다. 형식적인 승자라 해도 앙골라 내전을 다룬 유명한 게임영화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에서의 표현처럼 상처뿐인 승리였다. 비단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도 끝나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포함한 중동 분쟁, 시리아 내전을 비롯해 내전으로 고통받는 수단 등 모든 분쟁 지역은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다. 현재도 이들은 절박한 생계 문제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불안한 현실은 과거의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기에 이들의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그런데 이 비극 속에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개입과 전쟁의 비극 속으로 침투한 복음의 역사가 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 : 33 ) 말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바로 내전 기간에 앙골라 대부분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고 성도들이 핍박당하고 수많은 순교자가 생겨난 것이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 2세의 잔혹한 식민통치 이후 모부투의 독재로 야기된 내전으로 수백만이 희생된 ‘아프리카 내전의 대명사’ 콩고민주공화국도 내전 중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놀랍게도 순교의 피가 뿌려진 땅에서는 반드시 부흥이 일어난다.

지난 10일(현지시간) 앙골라복음주의신학교에서 열린 교회 지도자 세미나에서 황성주(둘째 줄 가운데) 회장과 참가자들이 함께했다. 황 회장 제공

지금 앙골라는 95%가 크리스천이고 복음주의 개신교회도 엄청나게 성장할 정도로 강권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있다. 유사한 상황의 콩고도 92%가 크리스천이 되었다. 영적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다. 처절한 상처와 트라우마라는 갈급한 심령 위에 은혜의 단비가 내리고 생수의 강이 터졌다. 오랜 고통의 현장에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그들은 지금 승리자로 서 있고 그들이 체험한 복음의 빛은 아프리카 깊숙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한 부활의 권능으로 조용하고 깊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도 치열한 생존 경쟁으로 가난한 심령, 애통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들의 기도는 항상 절박하기만 하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에게 부활의 생명을 허락하셨지만 그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요 11 : 44) 지금도 전 세계 최빈국은 대부분 아프리카에 있고 이들 모두 내전을 경험했다. 굶주리는 인구 대부분도 이 대륙에 있다. 그나마 이들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현지 교회는 재정과 경험, 사역자 부재로 고통받고 있다. 부활의 권능으로 영적 대반전이 일어났지만 여전히 수족은 묶여 있고 얼굴은 가려져 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 매인 것을 풀어주고 수건을 벗겨줄 사람이 필요하다. 손 한번 잡아주고, 기도 한번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한국 사회도 많은 고통이 있지만 이들에 비하면 사치스러울 뿐이다.

작년 한 해 한국인 해외여행자는 무려 2800만명이다. 전 세계가 코리아 열풍으로 한국인을 환영한다. 해외 여행지가 아닌 선교지로, 그중에서도 가장 고통받는 현장으로 달려가는 ‘위대한 하강’을 경험하기 바란다. 고통을 이기는 비결은 더 큰 고통을 품는 것이며 최상의 행복은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가슴에 디지털과 AI의 혁명을 넘어 사랑의 혁명이 불붙길 기도한다.

황성주 KWMA 회장·사랑의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