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변덕’에도 통상 전문가들과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미국의 관세 정책이 변곡점에 가까워졌다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될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 관세를 기점으로 ‘관세 폭격’은 일단락되고, 교역국과의 관세 협상 및 중국과의 양자 대결로 국면이 전환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정책 불확실성’을 무기처럼 휘두른 만큼 변동성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여전하다.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품목에 별도 관세를 매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언급에도 14일 시장에서는 안도의 반응이 나왔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는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투자자들은 (IT 관세 유예를) 미국과 중국 간 거래 문호가 열리는 최초의 신호로 인식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 관세 발표가 남아 있지만 (미국이) 관세로 더 이상 뭔가를 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연구원장도 “품목 관세를 정점으로 미국과 타국 간 협상의 장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관세전쟁’의 초점도 최종 타깃인 중국과의 맞대결로 옮겨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집권 1기 시절 미완성으로 끝났던 ‘대중 압박’을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중국의 맞대응 강도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트럼프 1기와의 차이점”이라며 “중국보다 미국이 입게 될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했다. 김 단장은 “미국의 대중 145% 관세나, 중국의 대미 125% 관세나 서로 교역이 불가능한 감정싸움 수준”이라며 “양국 모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관세 압박과 양보를 주고받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 내 반발 여론과 지지율 추이도 관세 전쟁 판도를 좌우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2년차인 2018년에 중국산 제품에 잇달아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며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관세 90일 유예’ 및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이후 결렬과 재협상을 거쳐 2020년 1월 ‘1단계 무역 합의’에 이르렀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18년에도 9월 지지율 급락과 11월 중간선거 참패 후 트럼프 대통령 의지로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했었다”고 말했다. 송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내 반발 여론이 커질 경우 미·중 합의 수순이 재현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이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는 변수로 거론된다. 장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시절보다 더 자신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경향이 크다”며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예상을 벗어나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