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 및 미국발 관세 충격 등으로 기업들의 재무, 신용 등이 하락하면서 대출 심사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이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월 대비 감소 전환한 배경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14일 “국내외 불확실성, 대선 전까지 보수적 자금운용 등으로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크지 않은 것도 이유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은행들은 건전성 사수를 위해 위험가중자산(RWA) 낮추기에 힘을 쏟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RWA 가중치가 높은 기업대출이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통상 연초는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커지는 시기다. 그러나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794조9811억원으로 전월 대비 3조9117억원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8조9075억원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이다.
전 은행권으로 대상을 넓혀도 이 같은 흐름은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3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전 은행권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3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약 2조1000억원 감소했다. 3월 기준 기업대출이 줄어든 건 2005년 3월 이후 20년 만이다.
특히 중소기업(-1조4000억원)의 대출 감소폭이 대기업(-7000억원)보다 두 배 가량 컸다. 은행 자본규제 관련 국제 기준인 바젤3에 따르면 기업대출에는 가계대출보다 높은 RWA 가중치가 적용된다. RWA 가중치는 대출을 내주는 기업의 신용등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BB- 등급 이하인 기업에 대출하면 대출액의 150%가 RWA에 포함된다. BB- 등급 이하 기업 대출이 부담스러운 이유다.
최근 금융 당국과 정치권의 주문에 내놓은 ‘25조원+a’ 금융 지원 역시 부담이 된다는 말도 나온다. 지난 9일 시중 주요 은행장들이 국민의힘 소속 국회 정무위원과의 간담회에서 RWA 비율 완화를 얘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당시 정상혁 신한은행장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규제와 관련한 위험 가중치를 하향해야 하고, 요구 자본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요청했다.
금융 당국도 미국 상호관세 부과로 국내 기업들에 가해질 충격을 줄이기 위한 장치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RWA 관련 제도 개편은 물론 경기대응완충자본과 스트레스완충자본 유예 연장에 대한 검토도 진행 중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기업 자금 공급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국제 기준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지원책을 최대한 신고하게 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