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14일 베트남 등 동남아 3개국에 대한 국빈방문을 시작했다. 시 주석이 올해 첫 해외 순방 일정으로 동남아를 선택한 것은 가까운 주변국부터 우군으로 확보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발표한 서면 연설에서 “올해는 베트남 공산당 창립 95주년, 베트남 건국 80주년, 남베트남 해방 50주년을 기념하는 해”라며 “중국과 베트남은 산과 강으로 연결된 사회주의 이웃 국가이며 전략적으로 중요한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 방문을 계기로 베트남 지도자들과 공동 관심사인 국제적·지역적 문제에 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하고 중국-베트남 운명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함께 만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이날 베트남 공산당 기관지 ‘년전’(인민) 기고문에서도 “중국-베트남 운명 공동체는 뚜렷한 홍색 유전자(공산당 이념)를 계승하고 있다”며 “양국은 산업·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5G, 인공지능, 녹색 발전 등 신흥 분야 협력을 확대해 양국 국민에게 더 큰 혜택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을 겨냥해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고 보호주의에는 출구가 없다”며 “다자 간 무역체제를 확고하게 유지하고 글로벌 산업 및 공급망 안정을 유지하며 개방적·협력적 국제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과 베트남은 1979년 국경 분쟁으로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밀접히 협력하고 있다. 베트남은 2018년 미·중 1차 관세전쟁 때 중국 기업들이 대거 생산 공장을 이전하면서 최대 수혜국이 됐다. 중국은 지난해 기준 베트남의 최대 교역국이자 세 번째로 큰 외국인 투자 국가다. 이번 2차 관세전쟁에선 베트남도 미국으로부터 46 %의 상호관세가 책정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국과 달리 90일간 유예 기간을 얻은 만큼 대미 관세 면제, 중국산 제품의 베트남 환적 규제 등을 미국 측에 제시하며 협상 중이다. 시 주석은 이날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한 데 이어 15~18일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를 잇달아 방문해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와 각각 회담할 예정이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순방에 앞서 주변국들과 운명 공동체를 구축한다는 외교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시 주석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지난 9일 주변국 외교 문제를 다루는 ‘중앙주변공작회의’를 개최해 “주변국과 전략적 상호 신뢰와 산업 및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주변국을 우군으로 확보해 미국의 견제와 압박을 헤쳐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