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올해 AI 사업 예산이 소폭 늘었음에도 사업구조와 방향은 되레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필수 추경’ 편성 이유로 AI를 거론한 만큼 버티컬AI나 피지컬AI 같은 최신 기술 흐름을 감안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14일 국민일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AI 관련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총 8023억6300만원으로 지난해(7957억4100만원)보다 1% 늘었다. 과기부를 포함한 전체 주무부처 관련 예산은 1조8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4000억원 증가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AI와 직결된 세부사업과 관련 연구개발(R&D)를 합산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양적확대와 달리 세부 내용을 보면 AI 최신 기술 흐름과 보폭을 맞추기 어려운 예산 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AI 사업예산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과기부를 중심으로 사업내역을 보면 전체 91개 AI 예산사업 16개는 폐지됐고, 22개는 삭감, 14개는 동결되며 대폭 구조조정 됐다. 폐지 또는 삭감된 사업만 38개로, 전체의 41.8%에 달하는 규모다. 과기부 관계자는 “예산 수치로는 늘었지만 사실상 감축 기조”라고 말했다.
특히 AI 기초 토대인 데이터 관련 사업 예산이 크게 축소됐다. ‘데이터기반 산업경쟁력 강화사업’은 지난해 613억원에서 올해 397억원으로 예산이 35% 줄었다. 같은 기간 ‘데이터활용확산정책지원’ ‘AI기반 공간정보빅데이터’ 사업도 각각 36억원에서 26억원, 35억원에서 26억원으로 감축됐다.
첨단 고급기술에 해당하는 ‘버티컬AI’ 분야에서도 대폭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버티컬AI는 의료 법률 등 특정 서비스 분야와 AI를 합친 전문화된 AI 기술이다. ‘데이터활용의료건강생태계조성’ ‘AI기반뇌발달질환 디지털의료기기실증지원’은 동결됐고, 일부 사업은 ‘일상화’ 사업으로 통합돼 폐지는 면했지만 전체 예산이 줄면서 지원 규모는 축소됐다.
AI 기초 및 첨단사업 지원이 크게 줄어든 건 정부가 AI를 전략 인프라가 아닌 단기성 사업으로 인식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데이터는 AI 산업의 기초 핵심재료지만, 산업 현장에 적용가능한 고품질 데이터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데이터 구축이 선행돼야 양질의 데이터를 요구하는 버티컬AI,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언급한 ‘피지컬AI’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피지컬AI는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해 행동으로 옮기는 기술로 휴머노이드나 자율주행차 등에 탑재된다.
관계부처와 전문가들은 AI를 전기·인터넷처럼 ‘범용 기술’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사업별 조각 투자’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체계적·장기적 관점의 재정투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데이터, 인재, AI에 들어가는 반도체(GPU 칩) 등 AI 필수 토대를 이루는 요소들에 대한 집중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김혜지, 김윤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