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킬레스건’ 희토류 틀어막은 中… 글로벌 공급망 경고음

입력 2025-04-15 00:17

미국의 ‘145% 관세’에 맞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이라는 초유의 카드를 꺼내 들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희토류는 반도체·스마트폰 등 부품 제조에 필수적인 희귀 광물로 중국이 전 세계 수출 물량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2010년 센카쿠열도 분쟁 이후 15년 만에 이뤄지는 중국의 희토류 수출 중단에 국내 기업들은 사태 장기화에 대비하고 나섰다.

1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중국은 자동차 및 우주항공 부품에 필수적인 희토류와 자석의 글로벌 수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일 희토류 7종 수출업자에 대해 정부 특별허가를 받도록 규제를 강화한 조치의 연장선이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이 부과한 145%의 고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희토류는 네오디뮴·디스프로슘 등 희귀한 원소로 이뤄진 자원이다. 반도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자석·화면·배터리 등을 제조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미사일이나 제트엔진, 레이더 등 군수품 제조에도 희토류가 들어간다.

게티이미지뱅크

중국은 희토류 시장의 최대 패권국이다. 2023년 기준 전 세계 희토류 공급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가별 희토류 매장량은 중국이 4400만t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브라질(2100만t) 인도(690만t) 등 신흥국에도 희토류가 풍부하지만 이들의 생산 능력은 각각 연 20t, 2900t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미국 매장량(190만t)은 전 세계의 2% 남짓이다. 한국도 반도체·2차전지 핵심 부품에 쓰이는 17종 희토류의 50% 이상을 중국에서 조달하고 있다.

희토류 정제 기술 시장 역시 중국의 독무대다. 희토류는 원유와 마찬가지로 갓 캐낸 원료 상태로는 공정에 이용할 수 없다. 화학적 분리 작업을 통해 정제를 마쳐야 하는데 이 기술 시장의 90%를 중국이 쥐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본국에서 채굴한 희토류를 중국에 보내 정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희토류 정제 공장을 미국에 세우기도 쉽지 않다. 희토류는 정제하는 과정에서 우라늄 등 방사성 폐기물과 독성 부산물, 중금속이 생성돼 수질·토양·공기를 동시에 오염시킨다. 값싼 인건비와 환경 규제를 무시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권력이 공존하는 중국에 희토류 정제공장이 모여든 배경이다.

중국이 희토류를 지렛대 삼아 자원의 무기화 전략을 구사하자 전 세계는 패닉에 빠졌다. 중국이 언제든 희토류 수출을 중단해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특히 중국이 희토류 중단을 선언한 것은 일본과 영토 분쟁을 겪던 2010년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우려가 크다. 당시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인근에서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중국이 격분하며 희토류 수출을 사실상 중단했다.

결국 미국이 어떤 대응에 나설지가 사태 장기화 여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15년 전 일본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 중단 카드를 꺼내든 지 3주도 되지 않아 나포했던 어선을 풀어주는 굴욕적인 외교적 패배를 맛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중국과 제1차 무역 분쟁을 겪을 당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압박을 받았지만 실제 실현되지는 않았다.

국내 기업들은 당장 희토류 수출 중단에 따른 우려는 없다면서도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은 아닐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중국이 여러 차례 희토류 수출 중단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써온 만큼 공급망 다변화에 대한 대비가 충분히 돼 있는 상황”이라며 “최소 몇 개월은 버틸 정도의 희토류를 비축해놨다”고 말했다. 정부도 6개월 이상분의 주요 희토류를 비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수출 통제책을 내놨지만, 실질 목표는 미국이라는 점에서 한국 기업의 타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희토류 수출 제한은 중국에도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주는 조치인 만큼 사실상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최후통첩 성격의 움직임”이라며 “한국 기업으로서는 희토류라는 대체 불가능한 자원을 놓고 미국·중국 양쪽으로부터 상대와의 디커플링을 요구받을 수 있는 게 최대 불확실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