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에 대한 미국의 변덕스러운 관세 방침에 국내 업계가 전례 없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들 품목은 국가별 상호관세는 피해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품목별 관세를 예고하면서 다시 ‘시계 제로’에 빠졌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상호관세 90일 유예(중국 제외)에 이어 지난 12일(현지시간) 스마트폰, 컴퓨터, 반도체 등에 대한 상호관세 면제 소식에 국내 기업들은 한숨을 돌리는 분위기였다. 전자제품의 가격 인상 가능성도 낮아지면서 제품과 반도체 등 부품에 대한 수요 둔화 우려도 잦아드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관세에 예외는 없다”면서 반도체와 함께 전자제품에도 품목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예고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재계 관계자는 “매일 내용이 바뀌어서 관세 대응책을 섣불리 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예측이 전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품목별 관세 방침이 나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미리 시나리오를 짜기도 어렵고 불확실성만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기업에도 타격이 불가피한 반도체 관세를 고집하는 배경에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로부터 첨단 메모리를 사서 써야 하는 미국 빅테크들의 경우 반도체에 관세가 매겨지면 비용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마이크론 등 미국 반도체 업체들의 생산기지도 중국과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 해외에 포진해 있어 관세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품목 관세 부과 관련 ‘유연성’이 애플과 인텔,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에 한해 적용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스마트폰을 상호관세 품목에서 제외한 것도 애플 아이폰의 가격 상승 우려로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진 미국 내 상황을 고려한 조치로 업계는 추정한다. 이럴 경우 한국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지게 된다.
국내 기업은 이미 확보된 공급망을 이용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여러 생산 거점을 활용해 관세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공급망 다변화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무역통상연구원장은 “단기적으로는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으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장기적 관점에서는 관세 리스크가 비교적 적은 나라로 생산기지를 새로 구축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