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찬탄’은 배신인가

입력 2025-04-15 00:32 수정 2025-04-15 00:32

지난해 12월 14일 국회는 의원 204명의 찬성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윤 전 대통령의 운명이 헌법재판소에 맡겨지는 순간이었다. 여당이던 국민의힘에서 최소 12명의 이탈표가 나온 것으로 분석되자 ‘찬탄파’ 인사들에게 책임을 묻는 화살이 쏟아졌다. 부결 스크럼을 짜 끝까지 버텼다면 탄핵안을 막아내거나 다른 수를 냈을 거란 주장이다. 찬탄파는 이후 탄핵 정국을 지나 지금까지도 친윤과 강성 우파 지지층의 거센 원성을 사고 있다. 배신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로.

그런데 당시를 돌아보자.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검경은 매섭게 수사를 벌여 주요 계엄 가담자들을 구속했고, 야당은 “될 때까지 한다”며 매주 탄핵안 상정에 나섰다.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 탄핵 촉구 군중이 집결했다. 12월 7일 1차 탄핵안은 저지했지만 대통령이 하야 권유를 일축하며 퇴로를 끊는 상황에서 국힘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버틸수록 보수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았겠나.

모든 건 윤 전 대통령이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라는 최악의 패착을 둔 데서 비롯됐다. 헌법재판소가 파면 결정문에서 밝혔듯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국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리라는 믿음이 상실되어 더 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지경으로 스스로 돌진한 것이다. 그렇다면 탄핵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은 누구여야 하는가. 국힘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탄핵 정국이 끝나고 대선 정국이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을 일통한 이재명 전 대표는 일찌감치 ‘1강’ 체제를 굳히고 홀로 트랙을 도는 중이다. 민주당은 나아가 ‘내란 종식’을 내세워 이번 대선을 끝까지 ‘윤석열 대 이재명’ 구도로 끌고 가려 한다. 필승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국힘과 보수 진영은 알아서 이 구도로 들어서고 있다.

여전히 ‘계엄과 탄핵’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여러 반탄파 정치인들은 찬탄파를 향한 보수의 적개심을 부채질하고, 탄핵에 찬성했냐 반대했냐 하는 것이 경선 과정에서 주요 의제가 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이 차례로 경선 출마를 접은 핵심 이유도 당과 보수 진영의 찬탄파 벽안시를 끝내 극복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굳이 대선판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당내 움직임 역시 기저에 찬탄파를 배척하겠다는 인식이 자리한다.

그러나 가망은 있는가. 대선은 보수층만의 표로는 이길 수 없고 중도층·무당층 표를 얻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한다. 100m 달리기에서 이 대표는 출발 총성과 함께 20~30m 앞으로 치고 나갔는데, 뒤쫓는 이들이 “너 때문에 망했다”며 서로 옷을 잡아당긴다면 경쟁 자체가 되겠나.

국힘 상당수 의원은 이미 대선에서 이기겠다는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반성하는 모습은 더욱 아니다. 대선 승리보다는 패배한 당 안에서나마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진짜 목적이 있는 것 같다는 세간의 평가에 더 눈길이 가는 이유다. 여전히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는 보수 지지자들도 이제 감정적 요인을 들어내고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현실 인식을 할 때라고 본다.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윤 어게인(Yoon Again)’ 같은 구호로는 대선에서 이기지도 보수를 구하지도 못한다.

지금의 보수 위기에 불을 붙인 도화선은 12·3 비상계엄이었다. 그런데도 국힘에선 반성과 성찰, 희생은 쏙 뺀 채 배신이란 낙인을 찍는 배척의 정치가 횡행하고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절박한 해법 공방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논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한들 그게 먹히겠나. 동굴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보며 그것이 진짜 세상이라고 매달린다면 대선 이후에도 보수엔 미래가 없다. 부질없는 배신자론만 남을 뿐.

지호일 정치부장 blue51@kmib.co.kr